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Feb 18. 2020

茶, 생명, 별의 사유

이 아침, 머그잔에 찻잎을 넣고 따뜻한 물을 붓습니다. 컴퓨터를 부팅하며 차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잠시 이 맛이 무엇인지 떠올려봅니다. 차 란 어떤 맛일까? 지금 마시는 이 차의 맛을 어떻게 표현하고 말해야 할까? 무미건조한, 별 맛은 없다고 해야 할지도 --- 그냥 알싸한 뭐 그런 --- 그런데 왜 마시고 있지? 그냥 오랜 습관인가? 습관이 맛을 지배하는 것일까? 습관과 맛은 전혀 관계없는 것인가?


다시 한번 찻물을 입에 담고 천천히 와인 굴리듯이 굴려봅니다. 그래도 특별한 표현을 하기엔 마땅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약간 텁텁한데 따뜻한 기운이 맛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 뭐 그런 정도의 표현밖에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언어가 가진 한계일 수 도 있고 맛의 감정을 전하는 표현의 부족일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맛은 과연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맛은 오감이 모두 작동해서 전달되는 기억입니다. 혀끝에서만 전하는 달고 쓰고 시고 짜고의 화학적 전달을 넘어 눈으로 보이는 차의 색깔과 코로 전해지는 향과 찻잔의 온기에서 전하는 따뜻함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차의 맛이 결정되고 거기에 차에 대한 과거 기억이 오버랩되어야 진정한 차 맛이 됩니다. 참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맛이라는 하나의 표현을 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 오감 중 하나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맛을 느끼거나 알지 못합니다.


단적으로 차를 마실 때 코를 막고 차를 마셔보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맛과 향이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바로 둘은 하나였고 특히 맛을 표현할 때는 향이 더 지배적입니다.


맛을 들여다보면 세상 만물 모든 것이 그렇듯이, 역시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안의 침샘에서 나오는 효소도 모두 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화학적 분해를 거쳐 뇌로 전달하여 맛과 향의 과거 기억을 조합해 내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물에 용해시켜 분석하는 것으로 진화해왔던 것입니다. 물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수소 두 분자 산소 한분자가 결합(H2O)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분해하면 결국 수소와 산소 원자만 남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도, 모두 200개(단순화시킨 개수입니다. 사람은 6조가 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세포를 구성하는 원자는 감히 셀 수 없는 숫자입니다)라고 하면 그중 126개는 수소이고 51개는 산소, 19개는 탄소, 3개는 질소 그리고 나머지 다른 원소들은 모두 합쳐야 하나 정도 됩니다. 이중 유기체 생명을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은 탄소가 합니다. 탄소는 결합력이 탁월하여 다른 원소와 다양하게 결합해서 우리 몸의 필수적인 단백질과 DNA를 구성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몸뚱이가 결국은 원자들의 결합으로 모여있는 것이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선인들의 지혜가 과학적으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체를 구성하던 원자들이 흩어져 다시 누군가의 호흡을 통해 생명의 구성요소로 다시 쓰이기도 하고 저 멀리 우주의 공간으로 날아가 다른 별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차 한잔 마시다 찻잔 속의 원자를 들여다보고 생명의 끝을 엿보고 하늘의 별까지 다녀왔습니다. 정신이 맑아졌다는 뜻일 겁니다. 머릿속을 맑게 정리해주는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차가 적당히 미지근해졌습니다. 한 모금 입에 담습니다. 차분해지는 아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함에 대한 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