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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9. 2020

놓치기 싫은 것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찻잔에 집중해 봅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찻잎이 든 머그잔에 따릅니다. 마른 찻잎이 찻잔 속을 빙빙 돕니다. 그리고 곧 찻잔 바닥으로 내려앉습니다. 게 중에는 계속 찻물 꼭대기에 남아 있는 찻잎들이 있습니다. 다들 가라앉는데 계속 떠있는 녀석은 어떤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계속 떠있을 수 있나 궁금해집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너무 보이는 것에만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미세한 물의 대류가 보입니다. 작은 찻잔이지만 뜨거운 물을 부었기에 그 안에서 온도차에 의해 물이 위아래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작은 잔속에 들어있기에 아무런 동요도 없을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비유까지 등장했을까요. 그 작은 찻잔에도 찻잎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게 하는 물의 장력과 찻잎이 가진 질량과의 치열한 균형 싸움이 있었습니다.

차를 마실 때 호호 불면서 마시게 됩니다. 뜨거워서이기도 하지만 떠있는 찻잎이 입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말입니다. 덕분에 뜨거운 차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세상엔 하찮게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각각의 역할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그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의 것인지 모릅니다.


그냥 지나쳤다면, 알지 못했더라면 그저 귀찮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했을 겁니다. 세상은 귀한 줄 알면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인식하고 지표면 생물이 공기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은 아주 작은 예외상황에서도 가능합니다. 입과 코를 막고 1분만 호흡을 하지 않고 참아보면 숨 쉬며 호흡하는 공기의 존재가 생명을 좌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진정으로 소중한 존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공기처럼 바로 지금 옆에 있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잊게 되는 아이러니의 관계로 지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바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실제의 언어입니다. 지나고 나면 소용없습니다. "그때 사랑한다고 했어야 했는데"는 이미 지나간 후회입니다. 항상 옆에 있어 주어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제 바로 옆 자리에 있어서 언젠가 또 무심해질지언정, 그 무심함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고 환기시키겠습니다. 잊을만하면 다시 떠올려 '사랑한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공기처럼 옆에 있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아침 글들이 불현듯 다가와 다시 들춰 읽고 싶어 지듯이 말입니다.


너무 가깝고 너무 쉽게 손에 쥐고 있어서, 잊고 있고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놓치지 않도록 되새기고 경계하고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놓치기 싫은 것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대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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