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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7. 2020

따뜻함에 대한 기대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 중에는 포근한 봄날 같더니 주말에는 눈이 오락가락하더니 그 여세를 오늘 아침까지 이어 옵니다. 잔눈이 깔린 이면도로는 얼어서 미끄럽습니다. 걷기도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조심 길을 나서시길 바랍니다. 얼어붙은 길만큼이나 바람도 매섭습니다.  지난주 상대적으로 따뜻했기에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모레가 우수라 봄의 문턱을 지나온 지 한참 된 시간이긴 한데 이렇게 눈으로 대지를 덮어버리면 어쩌죠? 지난주 제주에는 도롱뇽이 알 도 낳았다는 뉴스가 전해졌었는데 이 눈과 추위에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은근 걱정이 됩니다. 적응은 생존의 최적 반응이긴 한데 너무 빠른 반응은 위기의 경계선을 걷고 있는 위태로움일 수 도 있습니다. 적당히 따라가는 적응. 삶을 사는 자세와도 닮았습니다. 너무 성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중간 상태의 적응, 중용의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의 날씨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일견해도 눈치채게 됩니다.

이젠 절기상으로도 어제와 오늘 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는 것은 이번 계절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는 오히려 비를 더 많이 맞이할 테죠.


대기 중의 수증기가 뭉쳐 무게가 무거워지면 대지로 내려오는 현상을 비가 온다고 하고, 대지의 기온이 낮아 수증기가 얼어 대지로 내려오는 현상을 눈이 온다고 합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대지로 내려오는 현상은 같으나 형태가 다를 뿐인데 인지하는 인간의 감각은 달리 받아들입니다. 바로 인간은 감각기관의 대부분을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사용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연현상에 감정이 이입됩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거나 특히 눈이 내릴 때면 로맨틱해지고 멜랑꼴리 해집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눈이 내린다"라는 드문 현상을 강한 기억의 소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눈 내릴 때 있었던 온갖 좋은 기억이나 심지어 눈밭에 넘어져 다쳤던 기억까지 불러옵니다. 그렇게 눈의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계절은 하절 없이 온도를 높여 기억의 공간을 벗어납니다. 그것이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는 인간의 수레바퀴입니다.


눈은 덮어주고 가려주는 기능을 합니다. 모든 것을 단일 색인 흰색으로 평등하게 보이도록 치장을 해줍니다. 햇살이 적게 비치는 곳은 초봄까지 흰 눈을 덮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비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보여줍니다. 평등성에 있어서는 눈보다 비가 훨씬 더 기능을 발휘합니다. 응달에 있던, 양지에 있던 대지위의 모든 곳에 골고루 뿌려줍니다. 얼었던 대지를 녹이고 남아있던 잔설까지 씯어냅니다. 봄은 이미 귓전과 손끝에 에 와 있지만 들리고 만져지지 않습니다. 이미 남녘에는 매화가 피고 고로쇠나무에 물이 올라오고 있으며 제주에는 유채꽃이 피어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굳이 애타게 따뜻함을 갈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오고야 말 것이 또한 따뜻함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기다리는 것처럼,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으로 따뜻함이 오기를 바랄까요?


다만 인문학적인 바람이 아닐까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와주면 좋을 것 같은 따뜻함은 추운 것보단 더 좋을 것이므로 그러한 기대라는 것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황량한 들판보다는 초록의 새싹으로 뒤덮인 산야가 더 보기 좋고 앙상한 나뭇가지보다는 노랗고 빨간 꽃들이 만개한 나무가 좋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따뜻함은 바로 활기와 생명의 원천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참 단순한 반복이지만 항상 따뜻하면 이 또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감각입니다. 무뎌지고 둔해지는 감각은 참 교묘하고 간사합니다. 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가는 그런 가벼움입니다. 그것 또한 적응이라는 것입니다.


항온 동물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필연이 거기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항상 유지해야 하는 온도의 상 하한선이 있기에 우리는 그만큼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과 죽음이 그 온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파고들면 참 끝없이 알아야 하는 것 투성이 입니다.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세상이 융합되어 종합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봄의 초입에서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보다 느끼는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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