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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5. 2021

설이었는데 신년 운세는 보셨습니까?

나흘간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하고 영상통화로 세배를 드리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예전 같으면 설 연휴 마지막인 어제 같은 경우, 귀성길 전쟁에 대한 소식들이 마구 들렸을 텐데 고속도로가 평소 주말보다 한산했다는 뉴스가 대신합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고향방문을 자제하고 집콕을 해주신 덕분일 겁니다. 그 덕에 민족 최대 명절이 지나갔지만 코로나 확산은 더 넓어지지 않고 평상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땅히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는 어떻게들 시간들을 활용하셨나요? 그나마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영화를 보는 수준이 지루함을 덜 방법이긴 했을 겁니다. 예전 같으면 친척들도 세배를 오고 하면 윷놀이라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참 설이면 항상 보던 토정비결도 보며 웃고는 했는데 근래에는 이 토정비결 보는 것도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버려 사시사철 검색이 가능하다 보니 신년 초에 보던 그 기대감은 거의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신년운세를 보는 토정비결은 저에게는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토정 이지함의 한산 이 씨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토정비결의 운세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한해를 희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조심하게 하는 데에는 탁월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랑스러운 선조를 두고 있어 가슴 훈훈합니다. ㅎㅎ 집에 할아버님께서 계시던 80년 후반까지만 해도 설 명절 때에는 토정비결을 보는 얇은 책력를 한 권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책력에는 토정비결의 숫자를 찾아가는 퍼즐 같은 조견표가 적혀 있습니다. 생년월일에 따라 숫자를 3자리 숫자로 맞추고 그 3자리 숫자에 해당하는 곳을 찾아가면 해당 숫자의 그해 운세가 적혀 있습니다.


모든 운세를 보는 책들이 그렇지만 두리뭉실하게 희망을 주고 경계를 삼으라는 경구가 대부분입니다. 토정비결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 명절이 되면 찾아보고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어떤 예견을 보고자 하는 욕망일 겁니다. 이 욕망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믿음입니다. 좋을 것이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나쁠 것이다고 하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기분이 안 나빠지도록 노력을 할 것이기에 결국은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변환시킬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토정비결은 희망을 주는 책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ㅎㅎ 이지함 선생의 후손으로서 너무 자뻑일까요?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로 돌아가는 확률적 결정론의 세계입니다. 세상은 사물 중심의 세계가 아니고 사건 중심의 세계이기에 그렇습니다. 사건 중심의 세계는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독자적으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아(self)가 유일합니다만 자아는 현상입니다. 환상입니다.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자아를 제외한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자의 자아와도 관계 속에서 개념으로 만들어집니다. 존재란 정의도 관계로 정의되는 이유입니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이유입니다.


바로 삶은 가변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필연적으로 움직이지만 순간적으로 보면 우연으로 움직입니다. 이 세상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질 것 같지만 그렇게 대가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노력할 일은 내가 할 일이고 결과는 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어지는 데로 받으면 됩니다. 참 쉽지 않은 관점입니다. 인생은 주사위 놀이와 같습니다. 어떤 숫자가 나올 것인지는 확률적입니다. 그나마 주사위는 숫자가 6개밖에 안 되는 확률의 조합으로 계산되지만 인생은 전제된 숫자가 없는 무한수를 기반으로 합니다. 확률을 계산할 수야 있겠지만 그냥 운이라는 한 단어가 더 와 닿습니다. 그게 사는 겁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고 믿고 안 믿고의 차이입니다. 그렇다고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게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하면 됩니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될 테니 말입니다. 설 명절 동안 거리두기로 조용한 시간들을 보내셨으니 오랜만에 머릿속이 맑아진 상태로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실 텐데, "그래 이래서 휴가가 필요하고 연휴의 즐거움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3주 후에 다가올 3월 1일이 월요일이라 주말을 포함해 3일을 내리 놀 수 있다는 희망에 기분이 확 좋아질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곧 다가올 다음 연휴를 생각하고 기다리며 힘찬 한주를 시작할 수 있지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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