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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2. 2021

코 끝에 스치는 남자의 향기

오늘 아침 맞이하는 공기는 어떤 향으로 다가오시나요? 봄의 향기를 담고 있나요? 마스크 쓰고 있어서 입냄새만 난다고요? ㅠ.ㅠ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기온이 지난 주말 낮에 영상 15를 넘어선 관계로 완전히 봄기운 완연하다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젠 추위, 얼음, 겨울이라는 단어보다는 따뜻함, 꽃, 봄을 이야기하는 빈도가 훨씬 높아질 겁니다. 그렇다고 추위라는 녀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는 않을 겁니다. 이른바 꽃샘추위라고, 불현듯 영하의 기온으로 곤두박질치며 쫓겨나기를 거부할 때가 앞으로 서너 차례 더 엄습할 테죠. 그래도 날씨의 시샘은 시샘일 따름입니다. 어김없이 계곡물은 녹아 흐를 것이고 양지 녘의 버들강아지와 개나리도 움틈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미 아파트 한켠의 목련나무도 가지 끝마다 털북숭이처럼 달려있는 꽃망울의 크기도 커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계절이란 그런 것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봄의 향기는 그렇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월요일 출근길, 이른 아침 전철은 아직 봄의 옷차림은 아닙니다. 두꺼운 패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도리도 아직 건재하고요. 사실 멋 내느라 얇게 입고 벌벌 떠는 것보다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더우면 벗는 것이 가장 현명한 옷차림새입니다. 모두들 두꺼운 패딩 안쪽에는 멋진 봄의 기운들을 느낄 수 있는 셔츠들을 입으셨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철을 탑승합니다. 마침 빈 좌석이 있어 앉습니다. 그런데 코를 자극하는 향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옆 좌석에 앉은 노년의 아저씨로부터 전해지는 향입니다. '스킨 브레이서(skin bracer)'라고 정말 저에게는 전설의 애프터 쉐이브 로션의 추억의 향입니다. 이 초록색병에 든 향수를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계실까요? 아마 이 향을 기억하고 계시려면 적어도 50대 이상은 되어야 가능한 향일 겁니다. 70년대부터 남자들의 애프터 세이브 로션으로 명성을 누리던 거였는데 당시에는 '미제' 수입 로션으로의 명성이 한몫했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외제 물품을 야매로 파는 품목 중 인기상품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1만 원 정도의 대중적 로션으로 생산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로션의 향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맨솔 향 정도라고 해도 정확히 향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양복 입은 젠틀한 아저씨 향' 정로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스킨 브레이서 애프터 쉐이브 로션이 국민학교 시절 일화 속에 살아있기에 그 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외삼촌께서 사용하시던 로션이었거든요. 70년대 중반 강원도 대화에서 선생님을 하고 계셔서 제가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외가에 열흘 정도 놀러 갔습니다. 외삼촌댁에는 저와 동갑인 외사촌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때에도 여름방학에 외삼촌댁에 놀러 갔습니다. 어느 날인가 대화 시내에 유일하게 있는 영화관에서 어린이 영화를 한다고 저녁에 외사촌이랑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영화를 보러 간다고 들떠서 그런지 외사촌이랑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다가 화장대 위에 놓인 초록색 운명의 로션병과 마주 합니다. 초록색병의 마개를 열어봅니다. 외삼촌 냄새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외사촌 녀석과 그 향을 손바닥에 덜어 얼굴에 발라 봅니다. 와우 화끈거립니다. 진한 향이 코를 자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끈 거림에 정신없어 로션병을 바닥에 떨어트리는 통에 병이 깨져버렸습니다. 지금은 플라스틱병으로 제품이 나오는 모양인데 그 당시에는 유리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온통 방안에 스킨 브레이서 향이 가득합니다. 외숙모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스킨 브레이서 향의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고 외숙모한테 혼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어 그런 것이라고요? 그럴 수 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 스킨 브레이서 향만 스쳐 지나가면 어릴 적 외삼촌의 향이 떠오릅니다. 한 번도 제가 사서 써본 적이 없는 로션의 향이긴 하지만 추억의 향으로 남아 있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남자분들은 오늘 아침 샤워를 하시고 어떤 향의 기초 화장품을 사용하시고 향수를 사용하셨나요? 대부분 면도하고 세수하고는 애프터 쉐이브 로션 정도를 바르고 있는데 요즘은 세대가 젊어질수록 기초화장품 사용을 넘어 여자들 메이크업 수준의 화장을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색조화장을 하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베이직 로션 바르고 수분 유지 크림을 바르고 엔티 에이징 로션도 덧발라주어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줍니다. 그리고 다들 비장의 향수를 하나씩은 소장하고 옷차림을 마무리한 다음에는 살짝 손목에 향을 뿌려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시크한 도시남으로 집을 나섭니다. 저도 오늘은 Lab이라는 제품을 기초화장품으로 사용하고 있고 향수는 아쿠아 디 파르마(Acqua di Parma)를 사용했네요.


남자도 자기만의 향기를 은은히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땀내 나는 향기도 남자의 향기일 수 있으나 땀에 절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에 조심해야 할 향이 됩니다. 곧 봄으로 향해 가는 기온으로 땀도 나는 시절로 가고 있습니다. 땀냄새보다는 자기만의 향수로 은은함을 보유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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