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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3. 2021

버려? 말어? 안돼! 할 수 있어!

세상 살면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봐도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욕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일 텐데 그걸 내려놓는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산사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면벽 정진, 묵상을 하는가 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수습되는 일인가 봅니다. 속세에 사는 범인들이야 언감생심입니다. 하루에도 아니 한 시간만에도 온갖 욕심이 터를 잡고 팔목을 끌어 댑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편안한 것, 더 따뜻한 것, 더 시원한 것을 찾게 합니다.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욕심에 점철된 삶. 그 안에서 조금 내려놓고 뒤돌아보고 과하지 않았나 반성해보고 욕심과 내려놈의 중간쯤 어딘가를 걷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사실 욕심의 발로는 '비교'에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모든 것,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비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옆 집은 아예 TV를 없애버리고 벽면에 프로젝터를 쏘는 걸로 바꿨데. 영화관이 따로 없다는구먼" "차도 바꿨다는구먼. 사업이 잘 되시는가 보네. 부럽네"로부터 시작하여 전철 칸 앞좌석에 앉은 사람의 화사한 외투조차 눈에 거슬립니다. "와우 저분은 벌써 봄을 맞으셨네. 얇은데도 캐시미어라 춥지도 않고 멋을 제대로 내셨네. 근데 좀 비싸겠지" 등등 이 비교란 녀석은 경계도 한계도 없습니다. 비교하고자 하면 무궁무진 끝이 없습니다. 이 '비교'란 녀석은 대부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기반으로 합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가치가 낮다고 생각되는 것과의 대조를 비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욕심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교'는 나의 체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신체 건강하고 기력이 왕성할 때는 비교보다는 질적인 차이를 보려고 하지만 심신이 지쳐있을 때는 비교를 먼저 한답니다. 비교하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바로 에너지를 절약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우리의 브레인이 바로 이 '비교'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심신이 지쳐있으면 고단위의 분석이 필요한 쪽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생각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바로 '비교'입니다. 비교하는 일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냥 들이대고 눈에 보이는 차이만을 발견해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교'는 상대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만 해도 그렇습니다. 실력은 절대적이지만 성적은 상대적입니다. 전국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우등생만 모아 놓고 시험을 보면 거기에서도 1등과 꼴등이 정해집니다. 또한 전국 고등학교에서 꼴등 하는 열등생만 모아 놓고 시험을 봐도 거기에서도 1등과 꼴등이 정해집니다. 등수는 성적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집이 10억짜리인데 주변에 100억대 펜트하우스들이 널려 있다면 초라해 보일 테지만 오래된 연립주택 사이에 독보적으로 위치해 있다면 돋보이는 집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비교'의 가치도 천차만별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교'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고행하셨으며 부처님은 6년이나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셨습니다. 깨달음도 비교의 고리를 끊어내는 속세의 욕심을 버리는 일입니다. 인류의 선각자들이 그런 고행 속에 깨달아 내놓은 것들을 따라 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해내신 분들을 존경하는 일입니다. DNA에 각인되어 진화되어온 인간의 본성인 비교와 욕심의 근원을 새롭게 승화시키는 일은 그렇게 몇몇 분들에게만 가능한 정도의 일일까요?


사실 적절한 비교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도전이 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비교는 지나친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그 경계를 아는 것도 참 애매합니다. 그렇다면 나만의 것을 찾고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되지 않을 나만의 독창적인 그 무엇을 말입니다. 그거 자체가 남들 입장에서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일단 남들의 시선과 비교를 내려놓고 나에게 집중하는 일입니다. 나만의 일, 나만의 만족으로 비교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래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비교의 시선을 없앨 수 없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내려놓고 버려야 합니다. 매일 주식의 오르내림을 지켜보며 감정의 기복도 따라 움직여봐야 결국 원점이 되는 일임을 깨닫기 까지도 쉽지 않음을 지켜보게 됩니다. 당장 돈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비교가 눈에 보이는데 떨쳐내기가 쉽지 않음도 알고 있습니다. 비교로 인하여 벌어지는 현상을 알아채고 깨닫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식차트의 높낮이 변화에도 초연할 수 있습니다. 비교란 녀석은 그런 놈입니다. 비교하려고 하면 계속 비교하게 되고 내려놓고 바라보면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음을 눈치챕니다. 비교란 놈은 결국 내 마음이 만들어낸 가치이기에 있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기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그냥 내려놓으려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비교의 시선으로 욕심과 욕망에 끌려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세상을 살아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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