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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2. 2021

마스크로 입냄새에 갇혀 버리다

코로나 19로 못하게 된 것을 나열하라고 하면 끊임없이 적어낼 수 있을 겁니다. 여행도 못가, 친구도 못 만나, 쇼핑도 제대로 못 가는 등 주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들이 줄줄이 엮입니다.  모든 세상사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인데 관계를 맺는데 제약이 가해지고 제동이 걸리자 모든 것이 삐걱거립니다. 참아내고 이겨내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더욱 답답할 노릇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못하고 있는 많은 일중에 당장 현실로 다가와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 냄새를 잘 못 맡는다는 것입니다. 냄새를 맡고 못 맞고는 정말 중요한 감각입니다. 다세포 동물이 세상을 인지하는 오감 중 하나이자 특히 포유류가 공룡에 쫓겨 밤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가장 유용한 감각이 냄새를 맡는 후각이었습니다. 우리의 DNA에 각인된 후각 가능을 코로나 19가 마스크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마스크는 이제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 보다도 더 중요해져 버렸습니다. 출근할 때 휴대폰 없어도 전철을 탈 수 있지만 마스크 없이는 전철도 못 탑니다. 나에게 지금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금단증상과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겁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빠져든 함정입니다. 사실 없어도 사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되긴 합니다만 ㅎㅎ) 출근할 때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나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하루 종일 불편하고 불안할지는 몰라도 내가 잘 버텨내면 됩니다.


그런데 출근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고 하면 온갖 눈총을 다 받습니다. 아마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에, 아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마주하게 된 윗집 주민에게서 조차 마스크 쓰고 나오시라고 주의 아닌 경고를 받을 것이 뻔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아파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는 시국입니다.


이젠 마스크 착용이 당연시되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일상이 되기까지 1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마스크 하나 착용하는데 쉽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마스크 착용을 몸이 기억합니다. 집을 나설 때 신발을 신는 것과 같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문화적 밈처럼 계속되어 몸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1년 만에 밈이 되어버린 마스크가 이젠 유전적으로 아예 각인되어 버릴 것처럼 보입니다.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마스크가 들어와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무의식과 행동에 까지 마스크가 들어온 관계로 우리는 냄새를 맡는 기능까지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짝 염려를 해봅니다. 물론 한쪽 기능이 막히면 다른 쪽 기능이 활성화되는 가소성이 있긴 하지만 오감 중에서 후각을 막아버리면 어느 감각이 더 예민해질까요? 시각과 촉각이 더 예민해질까요?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으니 후각의 감각이 한 냄새로 일관되게 적응을 합니다.


바로 입냄새입니다. 구취. 좋은 냄새는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음식물을 잘게 만드느라 치아의 저작운동을 하는 과정에 입안에 남아있던 음식물의 잔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들일 테니까 말입니다. 식사후에 양치질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자주 닦고 자주 헹구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스크가 입냄새만 맡게 하고 외부 냄새를 차단하고 있으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외부로부터의 냄새와 향은 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감각입니다. 좋은 향은 기분을 좋게 할 것이고 악취는 주변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금방 눈치채어 회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마스크가 차단막이 되어 이 과정에 개입합니다.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후각 기능의 저하로 주변 분위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당장 아침 출근길에 길가에 연보라색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만났는데 불현듯 깜짝 놀랐습니다. 라일락 향기는 사실 너무 강해 가까이 있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하지만 은근히 전해지는 라일락 향기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만난 라일락에서는 향기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마스크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일락 향기 대신 입냄새만 기억되는 아침 출근길의 모습은 향기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지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흐린 아침 덕에 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라일락꽃을 바라보며 쓸쓸히 향기를 잃어버린 내 후각의 기능을 되살려 봅니다. 마스크를 살짝 들어 라일락 나무 주변에 퍼져있을 향기 분자를 흡입해 봅니다. 그렇게 후각 기능을 되살리고, 주변을 살피고, 과거의 향에 대한 기억까지도 소환해봅니다. 마스크로 인하여 잊히지 않도록, 아니 기능이 퇴화되지 않도록 빨리 마스크 벗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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