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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6. 2021

라일락향에 숨어있는 절절한 哀史

라일락꽃이 만개했습니다. 출근길 내내 코끝을 따라옵니다. 전철을 타도 따라오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옆에 있습니다. 7년 전, 라일락꽃 화사한 오늘 같은 봄의 절정에 우리는 꽃다운 젊음을 바다에 묻었던 원죄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의 7주기입니다. 라일락꽃향이 향기를 잃고 젊은 넋을 위로하는 향불의 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라일락꽃향은 향긋함이 아니라 절절한 비통의 아픔으로 오버랩되어 코끝을 따라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라일락향에 갇힌 세월호의 넋은 아직도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신 새기듯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탓일 겁니다. 이제 라일락 꽃향을 다시 꽃의 향기로 돌려놓아야 할 텐데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반성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밑거름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할 텐데 우리 사회는 아직 아닌가 봅니다. 안타까움에 애도의 심정은 더욱 절절해집니다. 그래도 라일락향은 담장을 넘어오는데 말입니다.


절절한 마음에 가로수의 연초록이 더욱 짙어 보입니다. 자연의 색깔을 더욱 초록 지게 만듭니다. 감정은 색깔의 명암에도 작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연초록의 잎은 그늘을 만들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봄을 알리던 꽃들의 향연은 초록의 색으로 대치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봄의 성숙을 알리는 철쭉이며 배꽃이 차지하는 시기입니다. 비가 내려 벚꽃잎도 대지로 내려앉듯이 그렇게 제 역할을 다한 것들은 뒤편으로 가고 새로운 것들에 길을 내줍니다. 또 열심히 숙성되고 짙어지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그 닦아온 길들을 미련 없이 양보해 줄 겁니다. 물러나지 않아도, 물러서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됩니다. 욕심을 부린다고 한 시간, 하루를 더 버티기 힘듭니다. 그저 자연의 시간이 부르면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자연은 생물과 광물의 공진화 현상입니다. 에너지를 흡수하여 살아움직인다고 하는 생물이, 조합해내고 운반수단으로 쓰는 것이 모두 칼슘, 나트륨, 철, 산소, 이산화탄소, 탄소, 인 입니다. 이 모든 광물은 자연 속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바로 돌멩이에, 저 보이는 산에,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물체조차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의 주원료인 석회석은 바로 캄브리아기에 번성하던 갑각류의 껍질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치도 거스를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로 공존하고 공진화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동안 상상 속에 갇혀 인본 우선주의에 빠져 있었을 뿐입니다. 자연에서는 인간이 절대 우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급입니다. 인간만이 에너지를 제일 많이 소모하는 비효율적 존재일 뿐입니다. 싹을 띄울 조건이 되지 않으면 단단한 껍질에 싸여 수천 년을 기다리는 은근과 끈기를 가진 식물도 있습니다. 열량 공급이 부족하다 싶으면 동면하는 동물도 있습니다. 항상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달시킨 인간이 그 덕분에 현존 지구의 지배자가 되긴 했지만 그 지구를 가장 빨리 망가트리는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과 공진화하는 인간세가 되는 길만이 서로 공존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비바람에 씻겨간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촉촉이 젖은 땅의 말랑말랑함을 발끝으로 전해 들으며 물기를 줄기로 끌어올려 이산화탄소와 에너지를 합성해내는 나무들의 위대함에 감사할 줄 알면 됩니다. 에너지를 향기분자로 세상에 흩뿌리는 라일락의 위대함에 경이를 표하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경구를 성경 속에 있는 낡은 문자로 남겨놓을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실천하면 됩니다.


자연의 일부로 이 순간 깨어있음에 감사합니다. 7년 전 오늘의 슬픔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오늘 세상과 이별한 또 다른 생명의 영면에도 삼가 라일락꽃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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