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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1. 2021

실내로 들어온 정원

지난주에 건축 인테리어 및 리모델링 사업을 하시는 가까운 지인을 만나 차를 한잔 하며 코로나 시국에 어려운 업종별 한탄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주로 국내 부촌 지역에 있는 저택들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정원 조경까지 설계해주는 VVIP 건축 토털 서비스를 하십니다. 이 분에 따르면 서울의 전통적인 내로라하는 부촌 지역이 강남지역보다는 강북지역인 평창동이나 성북동, 북아현동, 한남동 지역이었는데 근래에 부자들의 주거지역이 판교와 같은 서울 근교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강북지역의 전통적 부촌 지역은 70년대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가문들이 주로 거주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가문들의 젊은 3세들이 살다 보니 저택에 대한 개념이 바뀐 때문이랍니다. 예전에 저택이라 하면 넓은 정원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고 정원에 멋진 관상수가 심어져 있으며 잔디도 깔려 있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저택이 전형적인 저택의 모습이었는데 이 저택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근사한 정원이 있는 저택은 이제 관리를 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정원이 있으면 조경수 가지치기도 하고 잔디 관리도 할 정도의 관리인을 두어야 하는데 정원과 저택을 관리할 사람조차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저택을 재설계할 때는 정원보다는 저택에 차량을 몇 대 주차시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느냐가 설계의 최대 관건이랍니다. 예전 부촌으로 인정받던 강북지역의 명성은 바로 이 주차 문제로 인하여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북지역의 옛 부촌의 명성은 북악산이나 인왕산, 남산과 같은 산을 배후로 두고 있는 지역들인데 보통 차량을 2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정도여서 손님이라도 방문하면 차량을 지역 상설주차장에 대고 올라와야 하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랍니다. 운전기사를 두고 있어 주변에 주차하고 기다리다 오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그것은 집으로 초대하는 호스트의 입장에서는 실례로 받아들인 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저택 설계할 때 최대 차량 주차 공간을 많게는 7-8대까지 댈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럼 뭐 축구 운동 장만한 공간이 필요한 거 아니야?"로 반문할 수 있지만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설계의 묘미이자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차공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요즘 저택 설계의 기본이랍니다. 5대 이상 주차공간 확보 같은 경우야 뭐 특별한 주문일 테지만 그만큼 부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원을 없애면 그동안 정원에 있던 멋진 조경수와 초록의 잔디는 다 버리는 걸까요? 그렇지 않답니다. 멋진 조경수의 초록은 화분에 심어져 실내로 들어왔답니다. 몇 백 년 된 엄청난 조경수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실내로 옮길까 궁금했는데 분재하듯이 다듬는다고 합니다. 적어도 10년 가까이 조경수들을 다듬고 관리를 해서 실내로 들어갈 수 있도록 키우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특별한 조건을 하나 만족해야 한답니다. 바로 조경수의 키높이랍니다. 실내에서 커야 하기 때문에 높이가 2미터 이상 안 자라도록 하는 게 최근 실내 조경수의 조건이랍니다. 또한 이 높이는 엘리베이터 높이 공간에도 맞추어 펜트하우스 같은 고층을 선호하는 부자들의 거실에 까지 초록의 신선함을 전달할 수 있도록 특별 관리를 한답니다.


반려동물 키우듯 요즘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은 화분들을 소담스럽게 가꾸는 플랜테리어는 초록의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입니다. 특히 삭막한 빌딩 숲에 있는 사무실 공간의 경우는 더욱 초록이 그리운 공간일 텐데 화분에 심어진 녹색의 나무들을 가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안정제의 역할을 합니다. 꼭 부자들의 거실이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공간에 놓여있는 화분에 가끔씩 물 한번 더 주고 만져주고 말을 걸어 볼 일입니다. 사무실 한쪽에 놓인 화분은 작은 자연의 공간입니다. 소중한 공생입니다. 목마르지 않도록, 먼지 쌓이지 않도록 해주는 일은 화분을 실내로 들여온 인간이 자연을 대신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눈으로만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는 행동이 병행되어야 진정한 반려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오늘은 창가에 놓인 난과 사무실 한쪽의 뱅갈 고무나무에 물을 듬뿍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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