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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0. 2021

운동이 장비빨의 허세로 둔갑하다

아침시간, 직원들의 대화 소리가 파티션 너머로 들립니다. "자전거 샀다며? 얼마 줬어?" " 400만 원 조금 더 줬는데" "허걱! 400만 원이나?" "에이! 자전거 400만 원은 별거 아니야. 1천만 원 대도 많아" "자전거 말고 쫄쫄이 하고 헬멧 가격도 장난이 아니라며?" "뭐 한 땀 한 땀 떠서 만든 수제 쫄쫄이도 있고 커스터마이즈 한 헬멧도 있어 엄청 비싸" "우와! 그 정도야. 골프장비 비싸다고 하는데 뭐 들이대지도 못하겠네"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대화에 끼어듭니다. "자전거도 그렇고 등산도 그렇고 동호회에 가입하는 순간, 장비빨에 신경 안 쓸 수 가 없어요. 장비 빨로 동호회 내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된다니까요. 그렇다고 혼자 자전거 타고 등산 갈 수 도 있지만 혼자 하면 금방 흥미를 잃게 되고 해서 동호회 찾고 하는데 딜레마인 것 같아요" "코로나 19로 차박 캠핑 많이 하는데 캠핑장 한번 가보세요. 정말 장비 빨 엄청납니다. 예전 알루미늄 텐트에 매트리스 정도가 아니에요. 캠핑카가 아니더라도 아예 집을 옮겨놓은 글램핑 수준의 장비를 싣고 다녀요"


이게 뭐지? 웬 허세 타령을 이렇게 하게 된 걸까요? 비싼 장비는 좋은 장비일 테고 좋은 장비는 사용하기 편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뭐 디자인 예쁘고 폼도 나고 할 거라는, 그래서 남들에게 좋아 보이게 되는 것은 덤이라고 생각되는 뭐 그런 상상의 가치가 갖게 되는 보상일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으면 내 돈 주고 사는데 뭔 상관이냐라고 치부할 수 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로 사회를 보게 되면 욕망의 계단은 점점 높아져 끝이 없습니다. 무엇을 하던, 무엇을 가지고 있던 지금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 더 멋있는 것, 더 맛있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욕망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능을 가장 잘 표현하도록 꾸며놓은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일 테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한편으론 이 끝없는 욕망이 새로움과 가치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시각의 관점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장비를 교체하여야 마음이 편하고 운동도 잘 되고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겁니다. 골프채만 해도 그렇습니다. 매년 메이커마다 신형 장비를 내놓습니다. AI가 설계했다느니, 인체공학, 우주공학을 접목해서 만들었다느니, 비거리가 최소 10미터 이상 늘릴 수 있다느니 해서 아마추어를 현혹합니다. 제대로 연습도 못하는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은 혹하고 빠져듭니다. 비거리 10미터 더 늘어난다고 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습니다. 10미터 더 늘면 우드 잡을 것을 아이언 잡아도 되고 그러면 그린에 볼을 올릴 것 같습니다. 홀라당 신형 장비를 주문하고 필드에 나가봅니다.

에잉! 그런데 비거리가 예전 장비나 새로 구입한 신형 장비나 똑같이 나옵니다. "이게 뭐야? 속은 거야?"라고 장비 탓을 합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들께서 경험하셨겠습니다만 사실 비거리에 장비빨이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간혹 비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은 평소 연습도 많이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연습을 안 하는 대부분의 골퍼들은 장비만 신형으로 교체해봐야 말짱 도루묵임을 체험하셨을 겁니다. 신형장비로 교체했는데 비거리도 안 늘면 슬슬 비거리가 안느는 이유를 가져다 붙입니다. "내가 연습을 안 해서 그런 거지 뭐" "샤프트 강도가 나한테 안 맞아서 그런 것 같은데 피팅을 받아봐야겠네" 등등 말입니다.


사실 비거리 10미터 늘리는 것은 장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입니다. 몸은 그대로라 몸통 회전을 못하고 팔로만 치는데 비거리가 장비 빨로 인하여 늘 거라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입니다. 몸이 문제인 사람은 어떤 장비를 장착해도 비거리는 똑같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몸이 문제여서 장비 빨로라도 거리를 늘리려고 신형 채로 바꾸는 거 아냐?"라고 반문한다면 우문이라는 소리입니다. 뭐 아닐 수 도 있지만 장비빨에 따른 비거리의 변화를 거의 못 느끼는 저의 사례는 그렇습니다. ㅠㅠ


이제는 적어도 운동하는데 허세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말 그대로 운동은 운동이 되어야지 패션장이 되고 장비 전시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물론 장비가 좋으면 좋은 결과를 내고 힘도 들지 않고 기분도 좋아질 것이라는 가정은 타당성이 있습니다만 운동 결과와 전혀 관계없는 부분에 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장비빨이라도 구비하고 등장하겠지만 언덕 오를 때는 다리의 힘이 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비싼 자전거가 언덕을 오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가벼우니 힘이 덜 들긴 하지만 할 테지만 말입니다. 신형 드라이버가 폼은 나겠지만 오비나고 슬라이스 나는 것은 내 몸의 문제입니다. 장비 빨로 보충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몸을 움직여 더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까짓 장비 빨 우습게 보는 멘털을 키우는 훈련부터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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