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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2. 2021

"저기요! 세탁소 인식표를 안 떼고 입으셨는데요!"

어제저녁엔 모 언론사에 계신 분과 식사 약속이 있어 남산 기슭에 있는 목멱산방에 들렀습니다. 정갈한 비빔밥이 주 메뉴인 캐주얼한 한정식집이라 젊은이들한테 인기가 많은 집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도 소개되고 해서 줄 서서 밥 먹는 집이라는데 어제저녁은 7시 정도 갔음에도 줄을 서지는 않았습니다. 체온을 체크하고 QR코드로 식당에 왔음을 인증하고 빈 좌석으로 안내받아 들어갔습니다.


이 식당은 좌석에 앉아 메뉴 주문하는 것이 아니고 식당 입구 카운터에서 사전에 메뉴를 주문하고 선 지불을 합니다. 좀 특이한 영업스타일입니다. 카페테리아처럼 음식이 식판에 담겨 나오면 직접 테이블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건비를 줄이고 손님에게 조금 더 싼 가격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식당의 전략일 수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 대부분 선결제를 하는 식당들의 서비스는 꽝인 경우에 익숙해 있어서 달갑지만은 않지만 이 식당은 깔끔함으로 그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메뉴에 따라 가격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8,000원대에 비빔밥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백팩을 옆좌석에 내려놓고 앉아 음식이 준비되기를 기다립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감안된 좌석배치라 테이블이 조금씩 떨어져 있지만 식당의 명성에 걸맞게 빈 테이블은 없습니다. 그런데 옆 좌석에 젊은 처자 2명이 제가 좌석에 앉을 때부터 계속 쳐다보며 웃습니다. 안면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니 아주 친분이 많지 않고 몇 번 얼굴을 본 사이라면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힐끗 보고 웃는 정도가 아니고 대놓고 계속 웃습니다. 분명 쳐다보며 웃을 만한 사연이 있을 텐데 언뜻 떠오르는 행색이 없습니다. "백팩 형태가 이상했나? 아닌데" 그럼 "바지에 뭐가 묻거나 허벅지 부분이 뜯어졌나?" 재빨리 시선을 바지로 내려 훑어봅니다. 바지는 멀쩡합니다. 그럼 뭐지? "머리에 염색을 안 해 흰머리가 많은데 꼰대가 젊은이들 오는 식당에 왔다고 신기해하는 건가?" 뭐 짧은 시간 동안 웃음의 원인제공을 한 내 모습에 뭐가 문제인지 번개처럼 스캔을 해봐도 딱히 걸리는 게 없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옆 테이블 처자들한테 "혹시 ~~ 저를 아시나요? 아니면 제가 뭐 실수라도 했는지? 계속 보고 웃으시길래 민망해서 그렇습니다만"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옆 테이블 처자들 왈. "아저씨 카디건 뒤쪽에 세탁소 레이블이 달려있어요! 하루 종일 달고 다니셨을 텐데 생각만 해도 웃겨서 죄송하지만 계속 웃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합니다. 그제야 처자들이 저를 쳐다보며 웃은 이유를 알았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카디건을 산지는 한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신세계 톰보이에서 '코모도'라는 브랜드로 만든 것인데 평범한 남자의 데일리 룩을 지향하며 만든 'The ordinary man'  콘셉트의 옷입니다. 3년 전인가요. 뉴욕의 커티스 쿨릭이라는 아티스트가 협업하여 love라는 캘리그래피를 쓴 니트를 만들었던 그 브랜드입니다. 남성 정장도 만드는데 이 브랜드의 캐주얼 옷에는 목 뒤쪽에 태그를 늘어트리는 '태그 다지인'이 특색입니다. 옷의 컬러에 따라 흰색도 있고 검은색 태그도 달립니다. 어제 제가 입고 있던 카디건에는 흰색 태그가 달려있습니다. 2년 전 처음 이 옷을 접했을 때도 오늘 식당에서 웃음을 주었던 처자들과 똑같은 질문을 매장에 계신 마케터에게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 이 태그 떼고 입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고 말입니다.


어제저녁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거나하면 뒤에 서 계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기요. 옷 뒤에 세탁소 인식표가 달려있는데 떼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언질을 줍니다. 처음에는 "아 네. 세탁소 인식표가 이 옷 디자인입니다"라고 변명을 했습니다만 그 말을 듣는 사람 중에 무안해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서 지금은 "앗 그래요. 당장 떼어야겠네요"해버리고 맙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는 이 '태그 디자인'이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확증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옷 뒤에 무언가 흰 것이 달려있다는 것은 옷의 상표이거나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고 찾아올 때 아파트 호수와 이름이 적혀있는 인식표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상표와 세탁소 인식표가 각인되어 있으니 그냥 옷에 무언가 부착되어 있으면 당연히 둘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립니다. 더구나 유명 브랜드 상표의 이름도 없는 그저 흰색 태그라면 세탁소 인식표일 가능성이 100%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버립니다. "저기 세탁소 인식표가 달려있는데요!"라고 말을 겁니다. 그것도 태그를 달고 있는 사람이 그냥 달고 다니면 창피해질까 봐 조심스럽게 배려를 하여 알려줍니다.


이 태그 디자인을 기획한 디자이너는 이런 사람들의 확증편향적 사고를 알고 계획적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디자인적인 감각만으로 태그를 달았을까요? 태그의 크기와 길이, 넓이의 적당함이 거슬리지 않는 것을 보면 디자인할 때부터 많은 고민을 거쳐 만들어졌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신세계 톰보이에서 이 코모도 브랜드를 철수한다니 좀 아쉽기는 합니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이젠 날도 더워지고 있어 카디건을 벗어야 할 때도 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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