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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31. 2021

골프 라운딩 전야, 아재들의 치열한 카톡 신경전

골프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부킹이 잡힌 전날이 되면 밤잠을 설칩니다. 국민학교 시절, 소풍 전야에 잠을 뒤척이던 들뜸이 작동하는 것은 야외로 나간다는 묘한 동질감 때문일까요? 꼭 그런것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갈 때는 밤잠을 설치지 않습니다. 어떤 기재가 작동해서 골프 전날 - 어린 시절 소풍이 연결되어 밤잠을 설치게 만들까요?


바로 '약속'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이 라운딩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에 대한 약속 말입니다. 4명이 함께 해야 하는 운동이기에 한 명이라도 시간을 어기거나 늦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시간을 잘 지켜야 된다는 긴장감이 브레인을 지배합니다. 아침 일찍 알람 시간을 맞춰 놓고 잠을 청하지만 골프 전야에는 어김없이 두세 번은 잠을 깹니다. 자다가 벌떡 눈이 떠져 "일어날 시간인데"하고 시계를 보면 이런 새벽 3시밖에 안됩니다. 이때부터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눈꺼풀을 붙여도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해집니다. 그렇게 깜깜한 새벽길을 나서게 됩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을 깨는 것은 그만큼 긴장감이 강박관념으로까지 넘어오는 현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밤잠을 설쳤으니 몸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연습량 부족으로 제대로 되지 않는 실력이 더욱 엉망이 됩니다. 핸디의 망령은 무덤 속에서도 스멀스멀 올라온다고 영락없이 백돌이에 근접하는 스코어가 나오게 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영원한 루틴인가 봅니다.


지난 주말에도 오랜만에 동갑내기 친구들의 골프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새벽 골프도 아니고 오전 10시 54분 티오프인데도 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납니다. 10시에 클럽하우스에서 보기로 했으니 8시에 일어나도 샤워하고 준비하고 천천히 9시에 나가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새벽에 눈이 떠집니다. 이런 제길 오늘 골프도 순탄치 않을 듯 한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이런 긴장감을 풀기 위해 친구들끼리의 카톡방에 문자들을 날립니다. 이 문자는 골프 부킹이 잡히는 날부터 스케줄 알림의 목적으로 오고 가지만 결전의 날이 다가오면 점점 상대방에 대한 견제와 신경전으로 발전합니다. 소위 구찌(?)를 통해 상대방을 자극하고 결전의 의욕을 불태우는 현상입니다. 이 카톡방 문자는 결전의 전야가 되면 절정에 오릅니다. 카톡방의 생생한 신경전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사전 신경전으로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는 이유는 골프가 멘탈 게임이기에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심리를 흔들어서 아드레날린이 과분비되거나 하는 미세한 차이로 인하여 샷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 주말 골퍼들의 실력에 무슨 큰 변화가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이렇게 사전에 서로 씹는 재미가 또한 쏠쏠한 것이 골프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10만 원씩 낸 게임비가 걸려 있기에 서로 상대방의 주머니를 털고자 하는 속내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 녀석들 주머니 10만 원 털어서 부동산 살 것도 아니지만 게임 내내 재미와 긴장감을 더하게 합니다. 게임이 끝나면 결국 게임비는 캐디피와 식사비로 다 사용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10원짜리 고스톱판에서도 죽기 살기로 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골프게임에서도 벌어 집니다. 돈이란 액수에 관계없이 무서운 넘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신경전은 카톡방을 넘어 실전을 벌이는 라운딩 내내 펼쳐집니다. 매홀마다 가위바위보로 편을 짜고 룰을 바꿔가며 같은 편일 때는 상대편을 씹고 자극하고, 같은 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치기를 격려합니다. 그렇게 물고 물리는 구찌의 전쟁터에서 우정이 싹틉니다. 웃고 떠들고 명랑 골프로 재미있게 친구들과 놀다 온 주말이었습니다. 그 치열한 신경전의 결과는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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