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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7. 2020

만족의 스펙트럼

지금 이 상태, 이 순간에 '만족'하는가에 따라, 이 순간 이후의 행동이 좌우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만족'을 채우기 위한 어떤 행위를 할 것이고 '만족'하다면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족'이 지나쳐 과욕이 되었다고 느끼면 '만족'을 줄이거나 내려놓기도 하겠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족'은 바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트리거이자 바로미터였습니다.


만족(滿足)의 사전적 의미는 "모자람이 없이 마음에 들다"라는 뜻입니다. 상태의 충만함입니다. 물 한 방울 더하면 그릇에서 물이 흘러넘치는 그런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만족'은 만인만색의 수위를 가지고 있다는 오묘함이 있습니다. 같은 현상, 같은 상태를 보고 느끼는 수준이, 보고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다양성에 본질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의 수위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의 사람 마음은 모른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바로 자기가 생각하는 이 '만족'의 수위를 향하여 끝없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것도 삶의 경제적 '만족'을 위한 행위이며 우유 한잔에 토스트 하나 먹는 것조차 허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만족'때문이며 휴대폰을 열어 폭풍같이 유튜브와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는 것도 정보에 뒤처지지 않을 '만족'을 위한 행위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만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어떻게 활용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만족'입니다. 그런데 그 취향은 어떻게 발현할까요?


사람이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이 자기만족이 배경에 있습니다. 물론 생존을 위한 행동과 연계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동과 행위를 하게 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 자기만족은 백인백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성의 본질이 바로 자기만족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자기만족'은 생존과 직결되는 최상의 선택에 있어 학습효과로 유발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살아남는 방편으로 선택된 여러 사유들이 결국 '자기만족'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실패한 선택이나 방편이었다면 만족스러울 리가 없습니다. 이 행위를 하면 반드시 좋다, 좋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최면일 수 도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만족'입니다. 이 자기만족의 폭도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김밥 한 줄을 먹어도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스테이크를 먹어도 불안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이고 충분하고 부족한지도 각자의 경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폭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자기만족의 스펙트럼은 그래서 총천연색입니다. 이 총천연색의 스펙트럼에서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 자기화하는 것이 ;자기만족의 과정'입니다. 


오늘 아침 나의 '만족'에 대한 스펙트럼은 어떤 색깔로 비칠까요?  저의 오늘 아침 '만족'의 빛깔은 군청색과 자주색의 상보를 선택했습니다. 대비를 통한 조화에 맞추고자 함입니다. 칙칙하게 보일까요? 코로나 19의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좀 밝은 색상의 조합으로 바꾸어 볼까요? 그렇지만 하루 종일 이 색의 스펙트럼 속에 있더라도 계속 색깔이 변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는 것이고 또 그럴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오늘 아침 색의 스펙트럼에 어떤 필터를 끼우실 건가요? 앞이 안 보이는 코로나 19의 공포와 위협은 최상의 스펙트럼을 계속해서 상향 빔으로 형상화해서 비추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의 공포도 '만족'의 수준으로 빨리 하향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만족의 스펙트럼'은 밝은 쪽으로 향해 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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