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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9. 2021

돈 내고 공연장 간 게 언제인가?

아침 신문을 넘기다 가슴 뜨끔한 칼럼과 마주합니다. 우석훈 교수님께서 조선일보에 쓰신 "대선 후보님들, 자기 돈 내고 공연장 가신 게 언제인가요"입니다. 내가 뭐 대선후보도 아니니 그냥 신문을 넘길 수 도 있겠으나 대선 후보 다음에 나오는 " 자기 돈 내고 공연장 가신 게 언제인가요"라는 물음에 눈길이 멈춘 것입니다. 칼럼 전체 내용은 허물어져가고 있는 문화 정책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선후보들이 신경 써 주길 간곡히 바라는 우석훈 교수님의 충언이 들어있습니다. 천박하다는 표현으로 문화의 몰락을 애달퍼하십니다.


문화 공연계의 흥망성쇠를 논하기 전에, 정말 내 돈 내고 가본 연극, 뮤지컬, 오케스트라 연주회, 미술전 등 과연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니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없습니다. 영화관은 가끔 돈 내고 가면서 다른 공연장 및 전시장은 돈 내고 가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술전시회 및 뮤지컬, 음악 공연 등에 관심이 없어 아예 가질 않은 것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국내에서 하는 내로라하는 공연은 꽤 보러 다녔습니다.  심지어 지금 현재 제 주머니에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티켓 2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티켓 2장이 바로 '초대권'입니다.

이 '초대권' 티켓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대권이 없으면 괜찮은 공연이 있어도 가는 걸 포기했습니다. 공짜에 익숙해져 습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유명 공연이나 전시회가 공고되면 어느 업체에서 주관하고 어느 회사가 후원하는지부터 살펴봅니다. 연줄연줄이라도 줄을 대서 초대권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자 해서입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부분의 공연이나 전시들이 홍보를 위해 언론사들을 끼고 있기 때문에 언론매체와 업무를 하고 있는 직업상 초대권과 접할 기회가 많았던데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천박했다고 표현하는 우석훈 교수님의 일침이 창이 되어 가슴에 꽂힌 이유입니다.


아니 공연예술을 대하는 저의 정신상태와 태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반성합니다. 전시회나 공연 등을 보러 갈 정도의 예술에 대한 안목도 없었음을 말입니다. 돈을 내고서라도 봐야 할 이유를 대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덜 했고 열망도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전시회나 공연을 그저 "나도 봤어"정도의 자랑거리가 되거나 남들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을 정도의 체면치레 정도로 봐왔던 것입니다. 그 전시회나 공연을 봐야 뭔가 문화인이 된 거 같은 착각이 지배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으면 "연주를 보러 간다"라고 합니다. 음악회는 보러 가는 게 아니고 들으러 가야 합니다. 지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화음을 잘 엮어내어 곡을 해석해 내는 현장의 미묘한 음감을 들으러 가는 겁니다. 연주회나 공연을 보고 나서 "어땠어?"라고 물으면 그저 "잘하던데" "훌륭해" 정도로 밖에 답변하지 못하면 시간 죽이러 간 것입니다.


미술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회 가시면 관람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나요? 반나절 정도 전시장에서 꼼꼼히 감상하신 적이 있으셨나요? 빠른 발걸음으로 전시회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그림 앞에서만 잠시 오래 머물러 '아 그 그림이구만' 정도의 감탄사를 내뱉고 갔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특히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가야 합니다. 그림은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상과 작가의 관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에 반드시 알고 가야 그림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전문가인 도슨트의 설명을 반드시 경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마추어가 아무리 그림 공부를 하고 가도 전문가의 시선으로 설명해주는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초대권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효용 가치를 투자하지 않았기에 전시회 및 공연의 가치를 몰라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비용을 치러야 그만한 가치를 얻어내기 위해 집중하고 보고 듣게 됩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전시장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것이고 도슨트의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울 겁니다.


돈을 들여서라도 예술을 감상할 안목을 키우는 것은 본인의 몫입니다. 세상사는 가치와 의미에 수준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공짜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 자세도 나무랄 수 없지만 기꺼이 돈을 내고서라도 공연장과 미술관을 찾아가는 여유와 품위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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