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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9. 2021

하나, 둘, 셋? 아니면 파 바바박!

카메라가 집안의 가보 중 하나였을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해외여행자유화도 되고 하여 사진 촬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고급형 SLR급 카메라가 인기를 구가했고 관광지에선 일회용 필름 카메라도 팔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메라에는 필름을 넣어 촬영했다.


그러다 필름이 없는 디지털카메라가 90년 초반 등장했다. 사진 촬영에 있어 일대 혁명이었다. 필름을 사지 않아도 됐다. 사진 촬영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물론 당시에는 화질이 낮아 필름 카메라의 화질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기술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아예 필름 카메라 시장을 사라지게까지 만들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 24장짜리 필름 1통에 3,000원, 36장짜리 필름 1통에 4,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코닥과 후지 등 필름 메이커에 따라서도 다르고 필름 감도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랐지만) 지금도 온라인에서 코닥 24장 1 롤에 7,400원 정도 한다. 이젠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고 해도 어디서 현상 인화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골목마다 있던 사진현상소가 모두 사라졌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에서 가장 혁신적인 일은 바로 필름을 사서 갈아 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완전 수동 카메라의 경우 카메라에 필름을 장착하는 것도 기술이었다. 뒷 뚜껑을 열고 필름 한쪽을 잘 끼워서 감고 뚜껑을 닫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필름이 제대로 감기 지를 않는다. 그 후에 자동카메라가 등장하여 필름 롤을 넣어 한쪽을 걸어주기만 하면 자동으로 필름이 감겼다. 필름 감는 실력에 따라 사진 1~2장을 더 찍을 수 있었다. 사진 1장 1장이 돈이다 보니 하찮을 것 같은 필름 감는 기술도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또한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이 잘 찍혔는데 못 찍혔는지 현상을 하여 루페(Lupe, 확대경)로 필름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진 찍는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잘못 찍으면 말 그대로 현상 인화하는 비용까지 고스란히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경관 촬영이야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찍을 구도를 설정하고 셔터를 누르니 그나마 잘못 찍힐 확률이 낮지만 인물 사진의 경우는 예외다. 피사체가 움직이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하여 사진을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명이 찍을 경우, 꼭 눈감는 사람이 있어서 같은 장면을 두세 번 찍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사진 찍을 때 잘못 찍을 확률을 최소화하고자 사람들을 세워놓고 "하나 둘 셋"이나 "치즈 김치"등을 외쳐 찍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후에 셔터를 누르게 된 것이다. 하나 둘 셋에는 사진 찍는 사람의 현상 인화 값이 포함된 간절한 외침이 숨어 있었다. 제발 한 장으로 해결하되 안되면 두장 이내 최대한 세장 이내에서 잘 촬영되었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사진 찍을 때 이 하나 둘 셋의 습관은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사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값이 드는 것도 아니니 굳이 정자세로 세워놓고 인물 촬영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서거나 하면 연속 촬영으로 좌르륵 찍고 그중에서 잘 나온 한 장을 고르면 된다. 용량이 차면 잘 못 나온 순으로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잘 찍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하나 둘 셋의 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 촬영 행태로 꼰대 세대와 MZ세대를 구분한단다. 사진 찍을 때 사람을 세워놓고 하나 둘 셋 하면서 찍는 세대와 그냥 연속 촬영 모드로 파 바바박 찍는 세대로 나뉜다는 뜻이다. 2000년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휴대폰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다시 한번 사진 촬영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는데 바로 이 MZ세대들이 휴대폰 카메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요즘 휴대폰 카메라 성능은 1억 화소까지 육박하는 것이 나오기도 하지만 SNS 용으로 활용되는 사진들은 그렇게 까지 고용량의 화소가 필요치 않으므로 제작사들은 대신 전문가에 준하는 여러 기술들이 작동하도록 표준화를 해놓았다. 야간 촬영 모드라던가, 접사 촬영 모드 같은 것들이다.


휴대폰 카메라가 좋아지고 무거운 DSLR 카메라 가방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카메라 셔터 눌리는 소리감각만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창고 어딘가에 있을 옛날 카메라를 꺼내 먼지라도 닦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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