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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6. 2021

'담백하다'는 무슨 맛 ?

아직도 TV 채널을 돌리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면을 점령하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위 '먹방'입니다. 단순히 맛집 소개 차원을 넘어 이제는 그저 '처먹는다'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극적인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맛있는 음식 소개하고 열심히 준비한 세프들을 소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잘하는 것입니다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매일 소개되는 맛집이 온갖 채널에 등장하는데 이젠 방송에 소개되지 않은 식당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젠 맛집 찾기보다 '맛없는 집' 찾기가 더 힘들어졌을 텐데 그래도 아직도 맛집 소개는 계속됩니다. 전국에 있는 식당을 맛집으로 다 소개한 후에야 음식 프로그램이 끝날까요?


끝나지 않을 겁니다. 먹는 거야 동물의 본능이라 다시 재탕하여 소개하는 식당들이 등장할 겁니다. 채널별로 돌아가며 다시 소개하겠지요. 맛집 소개는 그나마 양반입니다. 먹방이 문제입니다. 먹방은 몸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으로 방송을 만들다 보니 이젠 몸을 혹사하는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극은 점점 더 강해져야 효력을 발휘하기에 이젠 자극의 수준이 충격요법의 단계에 까지 올라가 있는 듯합니다. 많이 먹는 것을 자랑하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혼자서 솥단지 하나를 다 먹었네, 20인분 소고기를 혼자 다 먹었네'라고 말입니다. 죄송한 말 입니다만 저는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안 갑니다. 맛은 양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질로써 먹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먹방을 안 보려면 TV와 휴대폰을 없애 버리는 수밖에 없을까요? 


"100개도 넘는 채널이 있는데 먹방 나오는 채널은 안 보면 될 거 아니야?" "나는 맛집 소개해주고 맛있게 먹어주는 먹방 프로그램이 재미있는데 왜 그래?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먹방 보기 싫으며 고상한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다큐멘터리 채널로 아예 선호채널을 고정시켜 놓으면 되잖아" "너는 밥 안 먹고 사냐? 어차피 먹을 건데 맛집으로 소개해주는 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 건데, 뭔 가자미 눈을 치켜뜨고 비난을 하냐? 참아라. 싫으면 너만 안 보면 돼. 이러꿍 저러꿍 할 필요가 없어요"


맞는 말이자 지적이긴 합니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먹방을 하여 배 터지도록 먹던지, 다이어트로 굶는 방송을 하던지 자유입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사회의 수준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먹방 프로그램이 많다고 저질의 사회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음식을 소개하고 먹는 방송을 이렇게 많이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겁니다. K푸드의 원조라 칭찬해야 할까요? 이런 프로그램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 기반이 되었을까요? 아닌 듯합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K푸드는 정갈하고 깔끔한 음식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양으로 승부하는 먹방 음식이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나 먹방을 보게 되면 듣게 되는 맛 표현의 대명사가 있습니다. '담백하다'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던지 모두 담백하답니다. 횟집에서도 담백하다고 하고 고깃집에서도 답백하다고 하고 야채볶음을 먹어도 담백하다고 하고 지방 막걸리를 마셔도 담백하다고 합니다. 음식 맛 표현의 만능키가 '담백하다'가 되어버렸습니다.


'담백하다'는 어떤 맛입니까? 담백하다는 맛이 있는 겁니까?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지방 맛(고소한 맛) 등 혀에 닿아 느껴지는 감각에 더하여 코의 후각에서 느끼는 향이 더해져 느끼는 매운맛, 떫은 맛 같은 촉각이 같이 작동하여 풍미를 느끼게 되는데 이중 담백하다는 표현은 어떤 맛의 조합인 것일까요?


'담백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淡(물 맑을 담) 白(흰 백)으로,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때는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정도의 표현입니다. 인문학에서 담백하다고 하면 "욕심이 없고 순박하다"는 표현입니다. "저 사람은 솔직 담백하다"라고 씁니다. 그런데 음식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담백하다는 용어는 맛있는 맛(?)을 표현하는 대표 용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회를 먹을때 담백하다고 하면 아무 맛이 없다는 뜻이고 야채를 먹을때 담백하다는 것은 간이 안되어 싱겁다는 뜻이 됩니다. 어느 음식을 먹을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담백하다'의 맛은 다르게 다가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온갖 맛에 '담백하다'를 들이댑니다. 무식의 전형입니다.


제발 맛 표현을 위해 끝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정말 맛의 오묘함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그런 사람들이 패널로 나와서 음식 소개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해봐"라고 하면 그렇게도 못할 거지만 음식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과 표현 하나하나까지 살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심혈을 기울여 음식을 만드는 분들과 세프들의 노력이 '담백하다'에 묻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점심은 어디 맛있는 집으로 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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