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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3. 2021

'욕'을 맛깔나게 하는 사람

'말은 사람의 품격'이라고 합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말은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하는 말이 생각입니다만 이 혼자 하는 말을 중얼거려 밖으로 내뱉으면 미친놈 소리 듣습니다. 대화의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은 상대방에게 나를 표현하고 행동을 요구하는 소통의 창구입니다. 말이 필요 없는 이심전심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심전심에는 상대의 의사표현으로써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가 '그럴 것이다'라고 지례 짐작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심전심의 본뜻이야' 서로 마음과 뜻이 통한다'는 것으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충은 알아챌 수 있으나 진심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이 필요하고 글이 필요합니다.


정확해야 한다는 겁니다. 말에는 대충이 통하지 않습니다. 두리뭉실 화법이 통용되기도 하지만 자기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물어야 하고 답해야 합니다.


바로 언어, 말은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릇이기에 그렇습니다. 언어가 생각의 원천입니다. 인간이 언어라는 '의미의 場'에 갇히고 난 후에  겪게 된 현상입니다. 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세상을 보는 창과 시간이 언어로부터 출현합니다. 물어야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고, 대답해야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것, 고급 단어를 나열하는 정도를 가지고 '말의 품격' '사람의 품격'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치레일 뿐입니다. 이 겉치레조차 못해서 폭망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말에도 허세가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듯하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화려한 표현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다는 겁니다.


말의 품격은 빨간 수박에 알알이 박혀있는 검은 씨와 같습니다. 검은 씨는 그 사람의 인성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품고 있습니다. 수박씨 하나 꺼내어 심어놓으면 다시 많은 수박이 열릴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수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고 어느 날 갑자기 갑툭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그 사람의 수준이 되고 품격의 원천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지난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쌍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품격을 지키는 사람(?)을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욕도 맛깔나게 섞어가며 대화를 하는 기술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욕을 해도 천박하게 들리지 않게 하는 기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바로 이미 그 사람의 품격을 타인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박하고 상스런 욕을 대화에 섞어 써도 그 사람은 그렇게 품격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에 대화중의 욕은 그저 양념으로 치부되고 넘길 수 있는 겁니다. 같은 단어의 욕을 하는데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달리 받아들입니다. 바로 말의 품격 이전에 사람의 품격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의 품격은 말뿐만이 아니라 평소의 행동이 섞인 종합판이기에, 말의 품격이 조금 천박한 단어가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그 사람의 전체 품격에는 큰 영향을 못 미치는 것입니다.


욕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화적 현상입니다. 문화적 차이에 따라 욕을 받아들이는 현상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영어로 'asshole!'이라고 말했다고 해도 단어의 뜻이 통하지 않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화내는 것 같긴 한데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정도일 뿐입니다.


대화로써의 욕이 아니고 감정의 표출로서의 욕은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욕설을 내뱉는 순간 특정 단어가 갖고 있는 감정이 같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해소의 역할입니다. 욕을 할 때는 심박수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욕은  감정의 언어이기에 욕을 하면 스트레스도 늘어나게 되는데 이 스트레스가 올라가면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역치 값도 높아진다는 겁니다. 언어가 감정을 조율하는 현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글로 표현되는 감정의 언어들을 살펴봐도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보면 모두 각이 져서 날카로운 글자 형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글의 경우도 주로 'ㄱ' 'ㄴ' 'ㄷ' 'ㄹ' 'ㅅ'을 넘어 'ㄲ' 'ㅆ' 'ㅉ'등의 문자들로 욕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드러운 형태의 'ㅇ'이나 'ㅎ'으로 만들어진 욕은 거의 없습니다. 참 신기하죠.

바로 언어도 소리의 파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화가 났을 때 감정도 격하게 흥분되어 있다는 겁니다. 파장의 높낮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그럴 때 표현되는 언어의 글자 표현들도 따라서 날카로운 단어들이 사용됩니다.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께서는 정말 천재가 틀림없습니다.


말하는 단어 하나, SNS로 보내는 문자 하나를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합니다. 말과 글에는 감정이 담겨있기에 그렇습니다. 결국 말과 글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고 문자를 보내 오해를 사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한번 더 읽어보고 한번 더 되뇌어보고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말의 품격이자 글의 품격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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