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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2. 2021

나만 아니면 되고 내 가족만 아니면 괜찮아?

복날, 닭장에 갇힌 수탉(The rooster coop) 신세인가? 닭장 밖에서 털 뽑히는 기계에 처박히는 닭들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고개 숙여 외면하고 있는 처연한 닭은 아닌가 말이다. 닭장의 쇠창살이 너무 튼튼해 보여 쪼아 보아도 부러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한 마리씩 끌려나가 도살되는데도 '나만 아니면 돼'로 일관하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히 닭장에서 푸득 거려 봐야 주인장 눈에 거슬리고 건강한 놈으로 낙인찍혀 다른 닭보다 더 일찍 털 뽑히는 기계로 가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서 쥐 죽은 듯 고개 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하루하루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현상에 안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회가 점점 대형화되고 복잡화됨에 따라 모든 현상은 법과 제도, 윤리라는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사회가 합의한 틀입니다.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 틀을 벗어나거나 깨려고 하면 많은 질타와 공격과 험한 욕설을 견뎌야 합니다.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틀과 규범에 합의하게 되면 그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틀에 맞지 않으면 불법이 되며 그러면 신체적이든 경제적이든 제재를 받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사회의 틀과 규범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 사회의 수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각양각색의 범위를 일률적으로 뭉뚱그려 하나의 수준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월등히 우월한 수준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회가 굴러가고 융합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이런 수준의 높낮이 평균이 그 사회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저렇게까지 가야 하나?" "꼭 저렇게 말하고 행동해야 속 시원한가?" 할 정도의 상식 이하 모습들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상황이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라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이 한 몸 바쳐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모습입니다. 자기가 하는 행동들이 불합리하다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옳다고 생각하기에 밀어붙입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 의견은 틀린 것으로 치부합니다. 다른 의견이 나올수록 더 열변을 토하며 방어를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자기식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에 참여하지 못하면 적으로 간주됩니다. "저것이 없어야 내가 살 수 있다"로 결론지어집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집니다. 이런 모습을 너무도 자주 봐왔습니다.

다른 의견을 청취하고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하고자 진행되는 토론회를 봐도 쉽게 눈에 보입니다. 토론자들은 자기의 결론을 가지고 패널로 나옵니다. 서로 결론을 이야기하니 의견이 합쳐지지도 발전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기주장만 하다가 끝납니다. 결론은 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입니다. 상처만 남습니다. 


토론 전에 반드시 기본적인 틀에 합의를 해야 합니다. 주제에 대해서 논의의 범위를 정하고 논쟁이 아닌 상대방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예의에 대한 합의입니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토론은 과거의 일을 가지고 논쟁을 하면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이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으로 이미 결론이 나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논쟁일 뿐입니다. 토론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합일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틀렸을 수 도 있고 맞을 수 도 있고 상대방이 맞을 수도 있고 틀렸을 수 도 있습니다. 서로 경계의 선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는데 좀 더 유연해집니다.


천차만별의 개성과 감정으로 점철된 개인의 삶들이 모여 군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인데 전제국가처럼 통일된 행동을 하는 것도 웃기는 현상입니다. 다양성을 어떻게 용광로처럼 녹여내느냐가 그 사회의 역량입니다. 지금처럼 내로남불이 통용되고 나만 아니면 되고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의 폭증을 누그러트려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이 생존의 기본 전제조건이긴 하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는 한계를 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다 좀 더 나아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타심을 첨가한다며 좀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만 더 주위를 살피고 한번 더 뒤돌아보면 다양성이 눈에 보이고 옆에 있는 사람의 체취도 느끼게 됩니다. 30도가 넘는 낮 기온으로 땀 흘리는 옆 사람에게 부채라도 부쳐주고 시원한 얼음물 한 컵 건네주는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사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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