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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1. 2021

"언제 밥 한번 먹자?"에 숨겨진 진실

세상은 허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관계로 이어진 형상입니다. 관계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로 형상화한 존재는 우리 브레인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각자의 브레인이 조작하여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을 실재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모든 존재는 우리 브레인이 만들어낸 관계의 의미일 뿐입니다.


언어도 관계입니다. 관계는 문장입니다.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야 문장이 되고 의미가 됩니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훈련을 하면 단어 수백 개는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침팬지는 아무리 훈련을 해도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말하지 못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모든 글은 이미지입니다. 선으로 연결된 관계로서 글이 만들어집니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소리의 진동을 정교히 조절하여 말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냈고 2차원 평면에 선과 선의 연결 관계를 가지고 글이라는 소통의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글은 공간의 관계이고 말은 시간의 관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를 규정짓는 일입니다.


실재를 보는 일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기원을 추적하면 실재는 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점을 연결하여 관계를 만들고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게 됩니다.


"뭔 소리? 저기 보이는 산이나 나무, 매미가 울고 있는데 너는 저게 산으로 안 보이고 나무로 안 보이고 매미 소리가 안 들린다는 거야?"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산이 있고 울창한 나무가 있고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가 지각의 범주화로 공통 인식하게 된 착각의 현상일 뿐입니다. 사실 찜통더위의 나무 그늘에서 울고 있는 매미 소리는 공기의 진동일뿐입니다. 공기의 진동이 내 귀에 파동으로 전달되는 순간에만 관계로서 존재하는 찰나적 현상일 뿐 그 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내가 존재합니다. 관계가 모이고 쌓여서 조직이 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됩니다. 이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어떻게 유지해갈 것인지가 그 사람의 인품이자 성격이 됩니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지도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쉽게는 내가 "밥 한번 먹자"라고 하고 밥 한번 안 먹은 사람들이 주변이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보면 됩니다. "밥 한번 먹자"는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의례적 예의에서 나옵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그렇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는 그렇고 한, 애매모호한 관계일 때 주로 사용됩니다. 물론 서로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일정을 확정할 수 없어 곧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표현일 수 있으나 그 약속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눈치챌 겁니다.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이런 진실 같은 거짓말이 표현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체화해야 합니다.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아니고 "이번 주 토요일 오후 6시에 평양냉면집에서 보는 게 어때?"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구체화했는데도 상대방이 선약이 있다고 하면 정말로 중요한 선약이 있거나 아니면 만나기 싫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선택은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관계 유지를 위하여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은 내가 자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관계 유지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눈치채기 때문입니다. 그저 의례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만나고 싶고 밥을 같이 먹고 대화를 하고 싶구나"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그런 것입니다. 관계는 어차피 실재를 이어주는 허상일 뿐이지만 이 관계를 잘 유지해야 허상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때요? 날도 더운데 시원한 냉면이라도 드시러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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