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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29. 2021

책 냈습니다

책 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게 88년 올림픽 하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직장의 홍보실로 자리를 옮긴 지가 벌써 30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 1년 차에 접어든 나이가 되었습니다. 무언가 정리해야 될 것 같은 강박감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매일 아침 일기처럼 써서 공유하던 글을 책으로 묶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한 달 쉬고 한 달 일하는 근무 형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들 경제적으로 쪼그라든 상태라 힘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엄습해온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에 대한 대답으로 글을 정리하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 중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재정리했습니다. 대충 모으니 300개가 넘는 에피소드가 됩니다. 그걸 워드로 정리하니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나옵니다. 너무 두껍습니다. 더 줄이고 추려야 할 텐데 제 손 자르는 것 같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본을 2권 해봅니다. 일단 가슴 뿌듯합니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물이니 상태가 어떻든 기분 좋은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욕심이 생겨 제본한 초안을 출판사 2곳에 기획제안서와 함께 보내 의견을 물었습니다. 욕심이 너무 컸나 봅니다. 출판사 두 곳 모두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명목상 거절 사유는 "해당 출판사는 에세이집을 취급하지 않으니 더 좋은 출판사 만나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정중한 거절입니다만 사실은 돈이 안된다는 것일 겁니다. 특히 원고 내용이 수준 미달일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고 나서는 다소 허탈하고 낯 뜨겁기도 했습니다. 그냥 제본한 2개의 가본으로 만족할까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출판 업무를 겸업하시는 분과 저녁 식사자리를 함께할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고 얼마 안돼서입니다. 식사자리 대화가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로 옮겨졌는데 가본을 보여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백팩 무게도 줄일 겸 넘겨줬습니다. 그 인연이 오늘 서점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600쪽이 200쪽으로 줄어들긴 했습니다. 일상을 보는 시각에 과학적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어 읽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을 모두 제하고 40편만 출판사에서 골랐습니다. 에세이 책들의 두께가 200쪽 안팎이라 거기에 맞춘 이유도 있답니다. 그렇게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책으로 엮여 예쁜 표지 디자인에 담겨 세상에 나왔습니다.


인연의 깊이는 참 그런가 봅니다.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인연의 흐름을 눈치채는 자 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가 봅니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내용의 충실함에 있어 부끄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직장생활 30년 세월을 정리하고 생각하는 하나의 사례로 이해해 주시고 받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놈도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놈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이제 책을 서점에 내놨으니 많이 팔아야겠죠? 책 내용에 공감하여 선뜻 손이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세상 살면서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관점을 들여다보면 세상은 분명 달리 보일 것입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게 되면 궁금증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사는 근원을 들여다보게 되고 관점과 시선이 디테일해집니다. 그러면 저 우는 매미소리가 들리고 태양빛이 피부에 닿는 따가움도 느끼게 됩니다. 책에는 그런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한번 넘겨봐 주시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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