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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3. 2020

같은 언어, 다른 뉘앙스

글은 언어의 시각적 표상입니다. 소통의 수단으로 글이 작동할 때 그 글은 모두가 공감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단어의 뜻에서부터 문장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같은 생각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된 전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용어에 대한 정의나 개념이 똑같지 않습니다. 같은 단어를 받아들이는데 개인적 감성과 과거 교육과정과 문화적 요소들이 가미가 된 각각의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미묘한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양산합니다. 의견이 분분하고 관점이 다르고 토론이 합일에 이르지 못하는 대부분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공통의 의미와 뜻을 정의해 놓은 '사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감정까지도 반영되어 매년 새로운 단어들이 가미되기도 합니다.

단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너머 감정의 공유로 인한 메타포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 아닌가 합니다. 상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요. 종교가 인류 문명을 이끌고 온 현상이 단적인 증거입니다. 사기집단으로 전락해 군중을 현혹하고 미혹하여 파탄에 이르게 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인간은 의미의 지배를 받고 동물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바로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행동하고 심지어 감정까지도 언어에 실어냅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극명한 구분이 바로 이 언어로 출발했기에 진화론적으로도 호모 사피엔스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언어로써 한글과 영어와 한자는 뇌에서 작동하는 resonance 부위가 다르다고 합니다. 한글은 소리글자이기에 세상 모든 들리는 것을 문자 화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지만 의미의 전달 부분에 있어서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는 상형문자이기에 문자가 곧 의미를 뜻합니다. 한자를 보는 순간, 의미까지도 동시에 알아야 하기 때문에 뇌에서 반응하여 활성화되는 뉴런 부위가 한글을 인지할 때보다 많습니다. 영어는 정확한 시계열적 분석이 가능한 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뿐만 아니라 동작을 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은 뒤로 따라오게 합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그 언어권 사람들의 특질을 만들어 냅니다. 민족성일 수 도 있고 국민성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그 문화권에서 형성되고 지배되고 있는 생활상과 습관과 자연적 현상까지도 언어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익숙지 않은 단어가 많이 포함된 글을 읽으면 공감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제가 아침 글의 주제를 자연과학 쪽으로 많이 끌고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이 건조하다" "글이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른 글 표기의 방법일 수 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학을 감성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글은 사람들의 발을 멈추게 하고 눈을 돌리게 하는 중요한 원천입니다. 공감하는 언어와 글이 이렇게 중요하고 처절한 감성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의 언어로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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