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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4. 2020

빨리 입고 늦게 벗어라

자연은 봄을 향해 가는데 코로나 19는 깊고 차가운 계절에 갇혀 벗어날 줄 모릅니다. 바깥 기온은 시나브로 오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습니다. 몸은 점점 움츠리고 마음은 닫아 겁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로 의심을 하게 됩니다. 대중교통수단을 탔는데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비난의 눈초리를 날리고 째려봅니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심성을 험악하게 자극하는 쪽으로 진화를 한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 탑승한 전철에서는 승객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이젠 마스크 착용이 사회 예절로 자리 잡은 모습입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온 듯하여 개운치는 않습니다.


이렇게 계절의 흐름을 잊게 하는 바이러스의 극성을 가만히 지켜보면 인간의 극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것도 결국 감염된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벌어진 일입니다.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입장에서야 돌아다녀주는 슈퍼 전파자가 있으면 고마울 뿐일 겁니다. 세상만사 그렇지만 상황 초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추후 방향은 정해지게 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심신이 움츠러들었지만 봄바람은 코끝으로 스멀스멀 파고듭니다. 3월 들어 아침 기온이 계속 영상을 보이는 것도 눈치채셨나요? 내일이 벌써 경칩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계절의 흐름을 말입니다.

바깥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면 '옷 입기'에도 변화가 와야 합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트렌치 코트를 꺼내 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트렌치 코트를 입기에는 망설여집니다. 캐시미어 외투를 계속 입기에는 걸으면 땀이 날 테지만 쉽게 바꿔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가벼운 옷으로 바꿔 입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놈의 바이러스가 옷조차 벗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추운 계절을 날 때, 옷 입는 철칙이 있습니다.  "빨리 입고 늦게 벗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외투를 입을 땐 빨리 입어야 추위를 시작할 때 확실한 보온을 할 수 있으며 계절이 다 가는 시즌이라도 늦게 벗어야 차가운 추위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 두껍게 입어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더우면 벗어 들고 다니면 됩니다. 하지만 추운데 얇은 옷을 입고 있으면 그것만큼 난감한 것도 없습니다. 벌벌 떠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위를 맞이하는 옷 입기에는 또 반대 논리가 적용될까요? 더울 땐 여름옷을  늦게 입고 빨리 벗어야 할까요? 곰곰이 체온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덥다고 해서 훌렁 벗고 얇은 옷을 입었다가는 갑자기 변하는 환절기에는 부적절한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바이러스라는 놈은 바로 그런 환절기의 면역력 저하 틈새로 파고들 테니 말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체온 유지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미적 상관성은 2차적인 일입니다. 체온 유지의 일차원적 이유라면 추운 계절엔 빨리 입고 늦게 벗는 게 맞고 더운 계절엔 늦게 입고 빨리 벗는 게 맞습니다. 


야한 생각을 하면 좀 야해지는 생각인가요? ㅎㅎㅎ

늦게 벗어 애간장을 태우는 것도 전략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계절은 이렇게 아침 옷차림에도 다가와 있습니다. 얇은 옷을 하나 더 입으시고 더우면 벗는 전략으로 환절기를 잘 버티셔야 초록빛 넘실대는 봄볕 사이로 하얗고 노란 꽃을 맞으러 자연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체온 관리 잘하셔서 코로나 19라는 놈이 범접하지 못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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