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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2. 2021

책은 제가 쓴 것이 아니고 여러분께서 만드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주변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되어갑니다. 코로나 핑계 삼아 멀리 하고 싶은 사람은 멀리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코로나는 사람 관계를 정리하는 청부업자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돈들이지도 않았는데 청부업자가 스스로 일을 자청해 말끔히 인간관계의 거리를 정리해주니 말입니다. 물론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정서와 감정 공유 없는 관계들이 재개되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내 일을 해 볼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벌인 일이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을 낸 일입니다.


책을 내놓고 보니 다시 한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좋은 친구와 좋은 동창과 좋은 직장 상사와 그리고 좋은 모임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속된 현실을 까발리는 듯 하나 바로 "책을 사는 현상"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정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치졸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까짓 책을 사고 안 사고를 가지고 주변 사람을 본다는 시선 자체가 옹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사고 안 사고의 단편적인 접근이 아니고 이 일로 인하여 사람의 심리상태와 인품을 나름대로 눈치챌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직 내 주변에는 던바의 수(Dunbar's number) 이상의 사람들이 가까이 계셨음을 재삼 확인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인쇄된 책을 손에 잡은 지 2주일째입니다. 초판으로 인쇄한 분량이 많은 부분 소진되어 2쇄를 찍을 것인지 e-book으로 할 것인지 출판사가 기획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합니다.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내 돈으로 책을 140권 샀습니다. 내 돈을 내고 자가 출판을 하기도 하지만 운 좋게도 이번 에세이집은 출판사에서 전적으로 내주신 덕에 비용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던바의 수 150에는 못 미치는 숫자의 책을 사긴 했지만 직장생활 30년을 정리한 결과물을 기꺼이 전해드리고자 하는 분들의 숫자가 대충 그 정도였습니다.

인생의 선배 되시는 분들에게 먼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 책 출간 소식을 말씀드렸습니다. 졸필의 책을 보내드리겠으니 댁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주소를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후배이지만 글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정말 황송하게도 직접 책을 사셔서 사무실까지 방문해주시고 저자 사인을 받아가신 여러 선배님들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죄송하고 송구한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선배님들께서 곁에 계셨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말입니다. 이런 분들이 제 주변에 계셔서 제가 그나마 이처럼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고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 교과서 샀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회에 나와 책을 두 번째 샀는데 그 두 번째가 자네 책이네"라며 10권을 사 가지고 오신 선배님도 계십니다. 

"왜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그것도 이 더운 날에 직접 들고 오시고?"

"무겁긴 하지만 자네 사인을 받아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내 후배가 이런 책을 냈다"라고 보여주고 싶으셨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이렇게까지 제 글이 힘이 있지는 않을 텐데 부끄럽고 죄송하기까지 했습니다. 무겁게 책보따리를 들고 되돌아가시는 뒷모습이 얼마나 송구한지 선배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책을 사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3일을 내내 가신 분이 계십니다. 3일을 출근하다시피 가셨는데 계속 재고가 없다고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책이 그렇게 인기가 좋아서 잘 팔리는 줄 알고 헛걸음하셨지만 기분이 좋으셨답니다. 결국은 매장에서 못 사시고 아들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주문을 하셨답니다. 사실 대형 서점 매장에서 제 책을 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마케팅 비용을 내지 않았으니 매장에서 주문을 할리가 만무합니다. 그나마 매장에 와서 제 책을 찾는 사람이 많으면 서너 권 가져다 놓는 것이 전부입니다. 2주일을 지켜보니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에는 제 책이 1권밖에는 비치되지 않았습니다. 3일을 내내 가도 책 구경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책은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서점에 가면 책을 살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책을 여러 권 주문해 주신 많은 선배님들, 지인분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합니다. 이렇게 제 주변에 계신 많은 분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모습을 갖추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고 주변에 계신 여러분께서 만드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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