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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3. 2021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세상 만물은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출신을 부여받습니다. 범주화입니다. 소속입니다. 분류입니다.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존재를 확정 짓기 때문입니다.


이 출신을 바꾸기는 근본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어떤 위치와 상황이냐에 따라 적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태생과 같이 출신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게 해 보려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달라진다는 믿음만 바뀔 뿐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바뀌면 다 바뀌는 것 아니냐?"구요. 맞긴 합니다. 그러나 바뀐다는 보편성을 확보하기에는 주관성이 너무 큽니다. 바뀐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맞습니다.


자연과학에서 출신 성분을 따지는 것은 인문과학에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자연과학에서 출신 성분을 묻는 것은 바로 물질의 범주화를 통해 미시세계로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118가지 원소를 양성자 숫자대로 나열한 주기율표 자체가 물질의 출신 성분대로 배열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에서 출신성분을 따지는 것은 바로 근본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문과학에서 벌어지는, 출신 성분과 계급을 따지고 암투와 시기의 근원으로 묻는 '출신'과는 근본이 다릅니다.

인문과학에서는 왜 이렇게 출신이 변질되어 있는 것일까요? 무한대의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편리하고 쉽게 사람들을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틀을 놓고 들이대면 됩니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전형입니다. 고향이 어디야? 어디 학교 졸업했어? 다니는 회사가 어디야? 정도의 틀만 들이대도 사람을 줄 세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출신에 따라 호감도가 확확 달리집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하면, 같은 부대는 아니라도 비스름한 강원도 철책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금방 친해집니다. 바로 같은 출신이라는 범주를 통해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치환해버리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경계를 해야 하는데 이 경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로 작동을 합니다.


반면에 이 출신을 따져 불이익을 주는 빌미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지역색이 가미되고 학교 간, 회사 간 경쟁상대의 소속이라면 급격히 경계의 끈을 당깁니다. 나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고 어떤 피해를 줄 상황이 아님에도 막연히 장막을 쳐버립니다. 이 현상은 한국사회의 병폐의 단면으로까지 등장합니다. 때만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지역갈등으로 일부러 조장되고 있기도 합니다. 경쟁자를 없애야 하는 비장의 도구로 활용됩니다. 출신의 범주화가 악용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렇게 출신과 태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자랐고 어디에서 교육받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형질과 본성을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을 적용하면 복잡다단해지니 와인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인만큼 출신성분을 따지는 상품도 없을 듯합니다. 와인은 까탈스럽게도 빈티지를 따지고 테루아를 따집니다. 어느 지역에서 몇 년도에 생산된 것인지에 따라 와인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소믈리에가 아닌 다음에야 맛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마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와인 산업에 있어 출신을 따지는 테루아와 빈티지는 그만큼 중요한 가격 판단 기준이 됩니다.


사람 관계도 와인의 빈티지와 테루아와 비슷하다고 믿는 겁니다. "니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묻는 이유는 "계급을 구분하고 경제력이 있는지 권력이 있는지 경계를 짓는 잣대로 활용하고자 함"입니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실마리로 활용되는 출신 성분 묻기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출신에 따라 신분이 구분되는 사회가 아님에도, 관습처럼 구분하는 행태를 빨리 버려야 할 텐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구분하도록 오랫동안 학습되어온 탓일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출신의 부정적 비교는 삼가는 쪽으로 생각의 전환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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