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Aug 17. 2021

디테일하게 세상을 보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

지금 책상과 컴퓨터 화면에는 어떤 것들이 보이고 있습니까? 눈앞에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시간 뒤, 아니면 이번 주에라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것들 일 겁니다. 자동으로 로그인되는 포털 사이트의 홈페이지가 화면에 떠 있다고요? 그것 또한 그 안에서 어떤 정보를 찾고자 하는 의지에서 첫 화면에 떠오르도록 놔두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말 귀찮고 쓸모없었다면 언젠가 첫 화면을 바꾸었을 겁니다. 어떻게 바꾸는지 몰라서 그냥 놔두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것 또한 가치의 기준이 남아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첫 화면이 심심풀이 삼아 쳐다보는 재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떻게 바꾸는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나의 의지가 속속들이 배어있는 무명치마가 초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입니다.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세상은 유수와 같이 흘러갈 뿐입니다. 왜 흘러가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남들이 흘러간다고 하니까 흘러가는 줄 압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도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으슬으슬 춥고 어떤 때는 식은땀도 흐릅니다. 그때서야 건강을 안 챙겼네, 나이 들었네, 이 나이 되면 다 그렇지 뭐 하는 등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시간을 바라봅니다.


시간에 주체가 빠져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라는 주체가 빠져있으니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타인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시간에서 주체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아내서 시간을 끌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시간을 디테일하게 보는 겁니다. 꼭 시간일 필요도 없습니다. 보이는 모든 현상, 모든 사건을 최소 단위로 바라보는 겁니다. 최소 단위로 바라보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 '하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복잡하고 풀 수 없을 것 같은 사건들도 그 근본을 찾아 쪼개고 쪼개서 들어가다 보면 아주 단순한 출발점을 보게 됩니다. 두세 개가 엮이면 복잡해지지만 하나가 엮여봐야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디테일을 보는 눈. 디테일의 심성을 보는 감각을 키우는 일이 바로 시간을 지배하고 일과 업무를 원활히 다루는 도구입니다.


세상을 디테일하게 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사물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관계의 지식을 많이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디테일해질 수 있습니다. 디테일은 가만히 관조하고 들여다보고 거기에 감각과 지각과 감성을 덧입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디테일은 세밀한 표현으로 환생을 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 하나만 가지고도 긴 문장을 엮어갈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지나쳐온 커피 가판대를 예로 들어볼까요? 어떻습니까? 매일 지나쳐온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 가판대 모습입니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런 의미도 어떠한 행위도 부여할 수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디테일하게 쳐다보면 무한대의 현상과 결과가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쓱 눈길에 스치는 메뉴판의 가격도 보이게 됩니다. 아메리카노 한잔에 2,0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2,500원도 보입니다. 가격을 그렇게 책정한 주인장의 심리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널린 스타벅스와 바로 앞의 탐앤탐스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현장의 모습입니다. 밖에 내건 메뉴판의 예쁜 디자인으로 무심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자 하는 세심한 유혹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회색빛 차양을 달고 갈색의 원두커피와 파스텔톤의 커피잔의 모습을 그린 키오스크 외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한 평 남짓한 그 키오스크 안에서 땀 흘리는 바리스타의 바쁜 손놀림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길가에 덜렁 서있는 키오스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진한 커피 향이 우러나고 그 향이 바람결에 코끝에 전해오는 이 순간의 시간이 함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디테일은 그렇게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는 단초입니다. 들여다볼 일입니다. 그러면 세상 돌아가는 일들의 최소 단위, '하나'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단순해 보이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렇게 세상은 살 수 있게, 살아지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