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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4. 2021

힘들게 서있던 책이 이제 편안히 누웠습니다

표지 얼굴을 보이며 서있는 공간으로까지 가자

책을 출간하면 서점에서 당연히 책을 살 수 있고 볼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매장에서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서점 매장을 며칠째 들락거리며 구두 뒤축이 닳고 나서야 깨졌습니다. 출판시장에도 유통의 힘이라는 엄청난 카르텔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자본시장의 순환을, 무지해서 늦게 깨달았습니다. 시장 경쟁은 철저한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흑색 장막이었습니다. 돈이 되면 걷히고 돈이 안되면 장막을 빠져나올 수 없는 암흑의 늪이었습니다. 돈이 되고 안되고는 오로지 독자라는 시장의 결정에 달려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조작되고 그런가 보다 속아주는 척 넘어가기도 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가는가 봅니다. 


그럴만도한것이 책 등록일 최근 2개월 기준으로 출간된 에세이 부문 신간이 무려 685권(예스24 기준)이나 됩니다. 국내 도서 전체로는 2개월 동안 11,582권의 신간이 쏟아집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 많은 신간이 매장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서점 입장에서도 감당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와중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합니다. 콘텐츠로 승부하던 책 표지의 화려함으로 승부하던, 아니면 마케팅으로 승부하던 결단을 해야 합니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렇지만 시장에 나오면 비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내는 방법입니다.


제 책이 인쇄소를 나와 온라인에서 주문이 가능해진지 딱 25일이 지났습니다.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을 낸 후에 주변 지인들께 출간 소식을 알렸습니다. 어차피 무명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책인데 출판시장에서 관심을 끌 일은 없습니다. 주변의 많은 지인들을 통한 '지인 마케팅'으로 1쇄 인쇄분을 소진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많은 지인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를 해주셔서 그럭저럭 1쇄를 소진하고 2쇄 인쇄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꼭 서점 매장에 들러 책을 사시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온라인 주문에 익숙지 않으신 선배님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그런데 매장에 여러 날 반복해서 들러도 계속 '재고 없음'이라고만 하더랍니다. 매장에서 주문 예약을 하면 가져다 놓거나 택배 우송해주겠다고 한답니다. 그렇게 제 에세이는 출간한 지 2주 정도는 서점 매장에서 볼 수 없는 책으로 존재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장에 책이 2권 정도 입고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오전에 어느 분이 홀라당 구매 예약을 해놓으면 역시 '재고 없음'으로 표시되고 서점에서는 없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2주 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접속하여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책 제목을 입력하고 매장 위치 및 재고 여부를 검색하면 [J13-2] 서가에 꽂혀있다는 안내가 뜹니다. 매장을 찾아가 봅니다. 그런데 서가를 아무리 뒤져도 책을 볼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직원에게 책 소재 여부를 문의합니다. 매장 직원이 와서 서가 맨 아랫칸 서랍을 엽니다. 그 서랍 안에 2권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렇게 서점 매장에서 책과 첫 대면을 했습니다.


서점에게는 죄송하지만 한 권을 서가에 끼워 넣습니다. 그렇게 서가에 책이 옆얼굴만 보이게 서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어제 23일, 월요일입니다. 서점 홈페이지에서 책을 다시 검색해봅니다. 잉!! 책 위치가 서가에서 [J3] 평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이는 책이 힘들게 서있던 단계를 끝내고 편히 누워 있다는 뜻입니다. 책이 서 있으면 매장을 찾아온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가 힘듭니다. 책의 존재를 알고 찾아와서 집어 들기 전에는 눈에 띄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평한 판매대에 책이 누워서 표지 얼굴을 온전히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며 가며 책을 집어 들어 볼 수 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판매와 연결될 것인지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지 싶습니다. (코로나로 서점 매장에 고객이 거의 없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ㅠㅠ)

교보문고 광화문점 에세이 부문 평대에 전시되어 있는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책

그렇게 거의 한 달 만에 서점에서 보이지도 않던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책이 에세이 부문 서가의 서랍에서 서가로 다시 평대의 판매대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책의 인지도가 높아감에 따라 차지하는 공간의 위치도 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출판사의 마케팅 노력도 한몫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젠 편안히 누워있는 공간을 넘어 표지 얼굴을 보이며 서있는 공간으로의 진출도 꿈꿔봐야겠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지금 있는 공간이 위치를 말해주고 시간을 결정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장을 꾸준히 방문하셔서 책을 주문해주신 여러분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계속해서 관심 갖는 독자들이 계셨기에 매장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존재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까지 여러분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할만한 콘텐츠인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보게 됩니다. 졸필의 책을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표지 얼굴을 당당히 내놓고 서있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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