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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30. 2021

'글을 쓰는 것'과 '일기를 쓰는 것'은 다른 일일까?

매일 '글을 쓰는 것'과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다른 일일까?


느낌이나 의식, 생각을 글이라는 디자인 형태를 통해 표현해내는 과정을 글 쓰는 행위로 볼 때 글을 쓰는 행위에 일기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일기도 일상에 대한 아주 담담한 생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행해지는 동작들을 글로 써 내려간 것이다. 글 속에 일기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글이라고 하면 정해진 주제에 맞게 기승전결이 전개되는, 일기보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글과 일기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하지만 구분 지어 생각하게 된다. 바로 주제어의 선택에 의해 달리 인식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을 쓴다'라고 하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일관된 전개를 해나가게 되고 '일기를 쓴다'라고 하면 특정한 주제보다는 하루에 벌어지는 일상적인 행위를 글로 옮겨놓은 형태라 할 수 있다. 글을 전개하는 데 있어 '키워드'가 있는지 없는지가 둘의 구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글을 쓰는 것과 일기를 쓰는 것의 차이는 공개된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글을 쓸 때는 대부분 그 글을 누군가가 읽을 거라는 공개성을 기반으로 한다.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고 알리고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기라 함은 남이 읽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쓴다. 개인의 독백과 같다. 그러다 보니 일기에는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상스럽거나 섹스어필해도 상관없다. 세상에 드러낼 글이 아니기에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데로 펜을 움직이면 된다.


그러나 글을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리면 글 전개가 막막해진다.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종이는 백지가 되고 화면은 하얀 화이트보드가 된다. 무언가 써야 할 텐데 써지지가 않는다. 참 희한한 일이다. 왜 그럴까? 바로 글로 인하여 자기가 평가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글로 써놓으면 그것이 바로 내 생각이고 내 의지가 된다. 종이에 적혀 있고 파일로 남아 있으니 확실한 증거가 되어 버린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각인되어 버린다. 거짓을 써놓으면 거짓이 박제되어 버린다. 자화자찬 미사여구로 써놓아도 알맹이 없는 허상을 나열해 놓았음이 금방 탄로 난다. 말로써 휘황찬란하게 언변을 구사하면 혹하고 넘어갈지 모르지만 글로 써놓으면 진실이 금방 드러난다. 글을 쉽게 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일기가 아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일목요연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기술은 반복된 훈련으로 가능한 일이다. 매일매일 키워드 하나를 붙잡는 것도 훈련으로 가능하다. 다만 키워드를 붙잡고 이를 글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키워드 관련 주변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키워드를 구슬처럼 꿰어서 목걸이를 만드는 능력은 지식을 연결하는 바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창고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지식창고에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쌓여 있는지가 좋은 글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 빈 창고에서 좋은 글을 엮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백과사전식으로 온갖 지식을 섭렵하여 쌓아 놓을 수 도 없다. 지식은 온라인에 널려 있고 쌓여 있는 세상이다. 구글에 지식의 양으로 승부를 할 수 없는 세상이란 말이다. 브레인 밖에 있는 지식들을 어떻게 실로 꿰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키워드를 잡는 능력이 있고 구글링을 통해 보편적 지식을 엮어내는 감각이 있으면 좋은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은 매일 같이 써서 구슬을 엮어내는 훈련을 하는 일이다. 그러나 보면 옥색 목걸이도 만들어지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걸리게 된다. 항상 좋은 글이 써질 수 없다. 하다 보면 가끔 거미줄에 걸리는 곤충처럼 덜커덩 걸려드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유명 관광지 바위에 새겨놓은 한자 이름 석자와 같은 것 말이다. 정과 끌로 파내도 흔적이 남는 그런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가야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엄중한 것이 글이다. 감히 매일 얼렁뚱땅 쉽게 써놓고 자족하지 않았나 뒤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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