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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1. 2021

제발, 뉴스시간에 안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연일 신문지면에 대서특필되고 뉴스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소식들이 있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아 신문을 치워버리고 TV 채널을 돌려버리게 된다. 정치 관련 뉴스도 그중의 하나이겠지만 정치 혐오하고는 차원이 다른, 반인륜적 살인 사건 소식들이다. 그것도 범죄 행위들이 점점 극악무도해지는 내용이다. 제발 뉴스 시간에 이런 사건 기사를 안 내보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언론에서야 이런 사건을 보도함으로써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도이겠으나 글쎄 오히려 인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로 인하여 살인 사건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살인 사건이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뉴스 보도와 사건 발생 빈도수의 상관관계를 찾는 것 자체가 가설의 오류일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 가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건 내용을 신문과 방송 기사를 통해 봐야 하는가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잔인하고 정신줄 빼놓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일까? 그러니까 서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주는 것인가? 이런 사건 기사를 내 보내지 않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밝혀지지 않으니 범죄자들이 더 많이 늘어나 사회가 더욱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게 될 것인가?

글쎄 사건사고 기사를 뉴스에서 안 내보낸다고 범죄자들의 심리를 더욱 잔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범죄는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범죄 발생 빈도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사회가 할 일이며 범죄가 발생하면 응당한 처벌을 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사회가 할 일이다. 소속된 사회가 얼마나 범죄를 통제하는지는 법적 제도 장치와 사회의 인식 체계에 달려있다. 범죄의 재발을 막는 방법으로는 법의 엄격함이 우선일 것이다. 법치주의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범죄나 법률 위반이든지 한 번의 용서 기회를 제하고는 모두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영원한 격리 말이다. 특히 타인의 생명을 뺏은 자는 더욱 그렇다. 살인자에 인권이 어디에 있는가? 이미 인권을 말살한 자에게 인권을 논하는 자체가 모순 아닌가? 


사형제도를 전근대적 가치관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줄어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어차피 살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놈은 제도와 상관없이 일을 저지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흉악범들이 다시 사회에 나와 재범을 할 기회를 아예 차단한다는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법 제도의 엄격함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윤리를 제대로 가르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기본적으로 품게 만들 수는 없을까? 범죄자들도 처음부터 범죄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조건이 맞아떨어졌기에 사회를 보는 인식이 삐뚤어진 것이다. 사회의 환경을 바꿔야 한다. 교육체계와 가정교육이 "공동 육아"를 하듯이 "공동의 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바로 사회의 모든 제도와 구성원 모두가 같이 공동의 가치관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긴 한 건가? 모두의 가치관이 같으면 그게 사회주의일 것이고 유토피아일 텐데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 가치관, 즉 인권과 자유의 한계 등 공동 사회가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는 기본 조건에 대한 합의만 있으면 된다. 사회는 그 기본 조건의 바탕 위에 집을 짓고 빌딩을 짓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은 살벌한 뉴스 말고 웃음 지어지고 가슴 따뜻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훈훈한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살벌한 소식이 있어야 작은 온정도 더욱 가슴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궤변을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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