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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6. 2020

관찰의 깊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눈이 갑니다. 그냥 지나쳤을 길가의 가로등 불빛 하나에서부터 옅게 밝아오는 동녘 하늘빛, 그리고 하얀 솜털 숭숭 난 버들강아지 같은 목련나무의 가지 끝 꽃봉오리 조차도 주의 깊게 보게 됩니다. 심지어 전철역 한 귀퉁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노숙자 행색의 그림자까지도 건강한 나날이 되길 전해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깨어남이 선행합니다. 이는 모두 이 아침의 글 주제 선정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고마운 속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구속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자세와 관점을 긍정으로 전환하면 될 일입니다.


끊임없이 소재를 공급하는 주제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해당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무언가 해내야 하기에, 써내야 하기에 무엇이든 가져다 붙이고 써야만 하는 강제력이 창의성을 자극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마감시간에 쫓겨본 자 만이 시간의 촉박함이 주는 긴박감과 긴장감의 쫄깃쫄깃함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있어 봐야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벼랑 끝은 시간에 대한 극도의 자각을 하게 하는 한 점일 뿐이지만 경계에 서 있다는 긴장감은 아드레날린을 폭발적으로 분출합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시간을 정해놓고 숫자로 표시해 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하게 만들고 해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긴장과 강제력이 창의력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에 숨은 마력이 있습니다. 모든 구속으로부터 풀려난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오히려 창작은 더욱 빛을 발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백지 같은 상태여야 무엇이든 쓸 수 있고 표현해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지를 채울 재료가 든든이 쌓여 있는 지식의 창고가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모든 속박을 내려놓고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도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시작을 합니다. 코로나 19로부터 벗어나기를, 그래서 활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말입니다. 또한 생명 있는 모든 것과 천지만물의 윤회가 자연스러운 길을 가기를 바라 봅니다.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원리의 휘어진 우주의 곡률을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길로 인도되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차 한잔의 은은한 미색이 좋아 보이고 그 안에 펼쳐진 찻잎의 녹색도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이렇게 어김없이 앉을 책상이 있고 이렇게 마주할 상대와 글로 대화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밝기가 태양계 움직임에 의해 시간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변화하는 모습을 관조하면서 그 안에 놓여있는 자아도 바닷물에 떠있는 플랑크톤 하나와 다름없음을 눈치채고 세상 모든 것이 같은 현상, 같은 존재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세상 만물과 내가 두 몸이 아니고 한 몸이었음을 증명하고 확인하게 됩니다. 굳이 모두를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 그 자체에 인간이 표현하는 사랑이 들어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벌거벗고 드러나 있어도 추하지 않게 받아주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연에는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가르는 유일한 종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눈은 편견과 욕망의 색안경을 끼게 만듭니다. 자유를 무한정 주면 자유가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의 모순'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만큼의 자유,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비현실처럼 들려오는 아우성일 수 있으나 인간의 눈을 선함으로 채워나가기 위한 존재의 부름입니다. 브레인을 들여다보려는 이유입니다. 항상 깨어있어, 모든 것을 관찰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보고자 하는 데로, 느끼고자 하는 데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색안경을 빼고 Fact에 근거한 진실을 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 느끼는 감각을 매일 갈고닦아야 할 이유입니다. 아침을 공유하는 이유입니다. 불금의 아침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느라 집에서 근신하는 주말일지언정 가벼운 손 체조라도 하셔서 건강이 약해지지 않는 주말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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