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Oct 19. 2021

사진은 '침묵이자 수다'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들먹이기 전에 그냥 사진 한 장을 들이대라. 그러면 상황 종료.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사진,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담긴 사진이어야 함은 자명하다. 사진은 '말없는 수다'다. 그냥 보여주면 된다. 사견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있는 그대로다. 사진과 말없는 침묵은 동의어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걸 전달한다. 물론 요즘은 포토샵을 통해 색보정을 하고 이미지까지 왜곡시켜 새로운 사진을 만드는 것조차 사진예술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사진예술분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던 자연주의를 떠나 창의성이 덧입혀지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정지시켜 보여주는 '추억의 현상소' 임에 틀림없다.


말은 터진 입이라 어떤 말을 뱉어낼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치장을 하고 준비를 해서 말을 시작해도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불쑥불쑥 원하지 않는 말들이 섞여 나온다. 말을 정제해서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글도 매 한 가지다. 그래서 강원국 작가의 '대화는 말하는 사람의 수사학이 아니고 듣는 사람의 심리학'이라는 문장은 폐부를 찌른다.


침묵이 성자를 만든다는 우화도 떠오른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헷갈린다. 아마 류시화 시인의 책이었던 거 같다) 오래전 읽은 거라 대충 각색하면 이렇다.

"한 마을에 아무리 경전을 공부하며 매진해도 크게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마을 지나던 현자가 그를 보고 "오늘부터는 누가 무엇을 물어보던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온화한 미소만을 띄고 바라보기만 하라"라고 조언을 했다. 그 후 가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거나 삶에 대해 조언을 구해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소리 없는 웃음으로 바라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소문이 났다.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이다. 소문은 옆 마을로 온 나라로 퍼졌다. 성자가 나타났다고 말이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구름같이 모인 군중들 앞에서도 그저 한마디 말없이 온화한 미소만으로 먼 산 바라보기를 해도 사람들이 절을 하고 성자로 추앙을 했다" 

말은 듣는 사람의 심리학이라는 글에 딱 어울리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성자의 침묵을 깨달음의 경지로 해석하는 군중의 얄팍한 심리를 지적하는 통찰이 있는 우화다. 

말과 침묵은 동의어다. 생각과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말이냐 침묵이냐를 쓰는 데는 둘 다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단어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칭하고 있지만 전달 수단으로써는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 두 수단을 적절히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침묵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겁한 침묵도 있다. 유리할 때는 말로 하고 불리할 때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다. 법정에서 주로 자기 방어적 수단으로 권장한다. 법정은 누가 더 사기를 잘 치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는 그런 곳인가?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전형의 공간임은 부인할 수 없다. 왜? 법정은 상대를 이겨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법정이 타협과 중재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갔다는 것은 감정의 골을 건너간 것이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이분법만이 통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로 침묵을 생존의 수단으로만 배웠기에 제대로 침묵할 줄 모른다.


사실 침묵에는 위엄이 따라야 한다. 얕은 지식의 식자는 당연히 입을 닫아야 하고 말 많은 촉새들도 입을 꿰매야 한다. 침묵은 권력 있는 자가 조용히 있을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 누구처럼 책임회피를 하고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침묵하는 경우는 제외다. 그것은 비겁한 침묵이자 옹졸한 조용함이다. 침묵할 때 위엄이 드러난다는 것은 그만큼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음에도 그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 힘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엄은 저절로 우러나와야 힘을 발휘한다. 침묵의 위엄은 바로 그런 것이다.


사진 한 장이 갖는 위엄도 똑같다. 감언이설,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그 한 장면으로 모든 걸 말해준다. 그래서 사진은 침묵이자 위엄이다. 풍경사진 한 컷, 음식 사진 한 컷조차 자랑질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구로 활용되지만 그러면 어떠랴! 백 마디 말로 떠들며 자랑질하는 것보다는 훨씬 위엄 있지 아니한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의 실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