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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1. 2021

음악을 눈으로 듣고 그림을 귀로 보는 사람들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종합예술에 해당하는 뮤지컬이나 콘서트 같은 공연은 오감을 넘어 심장 박동까지 동원을 해서 감성이 실린 현장감까지 보태져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술을 감상하는 우리들의 심상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감성은 언어에 물드는데 제대로 된 표현으로 예술을 감상하고 있는가 말이다.


우리는 "공연을 보러 간다"라고 표현한다. 오감을 더해 육감까지 있는데 오로지 보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연주회조차 '보러 간다'라고 한다. 중의적 표현을 너무 단어적 해석으로 몰아간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단어의 선택이 감성을 지배하기에 어떤 단어를 선택했느냐가 감상하러 가는 예술의 품격을 정하게 된다. 사용하는 단어로 인하여 선입견을 가지게 되고 그 선입견의 시각으로 예술을 보면 예술의 범위는 그 범위 내에서만 기능을 하게 한다. 단어의 선택은 그만큼 무섭다. 단어가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예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감상(鑑賞 ; 느끼고 이해하면서 즐기고 평가하다)하다'가 제일 적당한 단어일 듯 하긴 하다. 영어로는 appreciation이다. 그런데 이 용어를 사용하면 엄청 어색하게 들린다. "저녁에 오페라 감상하러 간다며?"와 "저녁에 오페라 보러 간다며?"의 차이다. 이미 우리의 대화 내에서 '보러 간다'는 뜻은 공연을 감상하러 간다는 뜻이 모두 들어있는 단어로 굳어 있는 것이다. 바로 단어의 통용이 관건이다. 단어가 자주 사용되어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풍부한 감성을 살릴 단어 선택을 못해 우리는 예술을 너무 가볍거나 그저 보고 듣는 일상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 분야에서 엄청난 예술혼을 불살라 표현해내는 그 열정을 그저 지켜보고 들어주는 수준밖에는 안 되는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이러한 예술을 보는 문화 현상은 최근 미술계에도 급속도로 번지는 듯하다. 미술품을 작가의 예술적 감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매겨진 가격으로만 보는 것이다. 주식에 투자하듯이 예술품에 투자하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림에 대한 투자는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높다는 선전과 함께 현금화가 쉽지 않아 2~3년 묻어둘 각오를 하고 여유자금을 동원하라는 아트 컨설턴트의 조언도 난무한다. 그림이 새로운 투자처로 부각을 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 헷갈린다. 글쎄, 나는 이 현상을 저급한 문화의 확산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주식 차트 오르내림을 보고 있듯이 그림의 가격이 오르내림만을 보고 있다. 그림에 대한 모독이다. 아니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림 가격이 오르면 화가에 대한 평가도 따라서 높아지는 것 아니냐?" "그림의 예술성을 인정했기에 고가의 가격을 주고라도 소장하고자 하는 것 아니냐?" "그림을 진정으로 아는 혜안을 가진 사람만이 그림을 사는 것"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이다. 창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화가의 그림에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팔리는 것은 당연히 인정해줘야 하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미술계에 묻지 마 투자처럼 그림 경매장에 불어닥친 거래 광풍의 호가는 경마장 투기와 진배없어 보인다. 그림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그렸는지 화가에 대한 가치가 곧 그림의 가치로 대응된다. 그런데 과연 유명 작가의 그림은 모두 가치 있는 것일까? 한번 경지에 오른 작가는 끊임없이 좋은 작품을 그린다는 것일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두면 로또가 되는 것인가 말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귀로 보는 사람들의 저급함이 불러온 과열현상이 아닐까 하는 하찮은 염려에서 하는 말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품격의 반증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그동안 공연을 눈으로 보기만 하고 귀로 듣지를 못했고 미술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본 것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결국 예술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지식을 쌓아야 한다. 오케스트라 협연이 지휘자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어 각각의 악기들이 연주되어 펼쳐지는지 세밀히 들어봐야 한다. 음악을 눈으로 듣는 어리석음은 이제 버려야 한다. 유명한 그림 봤고 유명한 오케스트라 연주회 봤고 오페라 봤고 하는 허세의 하나로 예술이 존재하게 하는 것은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말이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지식을 쌓는 공부를 하고 보고 듣고 해야 제대로 들리고 보인다. 예술을 너무 폄하하지 않게 하는 자세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달렸다. 미술전에 가고자 한다면 어떤 작가 어떤 그림들이 전시 예정인지, 그 그림들이 그려진 배경은 무엇인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공부를 하자. 공부할 시간이 없으면 도슨트 설명 시간이라도 맞춰가서 전문가의 해설을 듣기라도 하자. 품격을 높이는 일은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림은 보고 음악은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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