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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2. 2021

실패가 정상이고 성공이 비정상이다

우리는 항상 성공한 결과만을 본다. 성공하기까지 펼쳐졌던 수많은 좌절과 실패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 실패와 시행착오 결과가 실패의 확률을 줄여왔고 성공은 그 끝에 있었음을 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위성 발사는 실패가 정상이고 성공이 비정상이다.


굳이 인공위성이 제 궤도를 찾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실패 요인들을 차례로 딛고 올라서야 가능한 일임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이륙 직후 과정에서의 폭발, 궤도 이탈, 3단 로켓의 분리 타이밍 실패 등, 정말 천문학적인 실패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실패 요인들을 하나씩 극복하고 고도를 찾아가야 성공을 한다. 성공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성공은 기적이다. 궤도 안착은 못했지만 누리호를 발사하여 목표했던 궤도까지 올라간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한 과학자들께 경의를 표해야 할 일이다.


누리호는 어제 3단 로켓의 46초 추력 부족으로 인해 궤도를 돌게 하는데 실패했다. 단지 46초 때문에.


목표했던 700km 고도에 올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1.5t 무게의 모형 위성을 지구 궤도로 돌게 하는 데에는 초속 7.5km의 속도로 진입시켜야 하는데 3단 엔진이 목표 연소 시간인 521초를 버티지 못하고 475초 만에 조기 종료됐다. 단지 46초의 추력 부족으로 목표속도보다 초속 800m가 부족해 궤도를 도는 속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초속 7.5km는 무게 1.5t의 모형 위성이 700km 상공에서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궤도를 돌 수 있는 속도였는데 그 속도에 미치지 못해 지구 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므로 위성은 지구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3단 엔진이 목표했던 521초보다 조금 더 연소했다면 모형 위성은 궤도를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궤도를 돈다는 것은 위성의 무게와 속도, 중력의 힘이 같아야 가능한 엄밀한 숫자다.

46초. 잠시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지나갈 시간밖에 안된다. 그 짧은 초 단위의 시간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그만큼 물리학은 정밀하고 엄밀한 과학이다.  이 초 단위의 시간성 엄밀성을 맞추기 위해 실제 발사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험을 거친다. 이번에 문제가 된 3단 엔진조차 12개의 시험 엔진이 제작되어 90차례에 걸쳐 1만 7,000초에 달하는 테스트를 거쳤다고 한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으로, 실패 확률을 줄여 나갔고 이제는 제 기능을 할 것이라는 데이터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누리호를 완전체로 모아 처음으로 발사한 시험이다. 인공위성도 모형을 실었다. 더 정확하고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단계였다. 실제 인공위성을 탑재하고 발사했을 때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행연습이었다. 한 번에 성공하여 성능을 뽐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 실패로 다음번에 더 정밀한 발사가 될 것이기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주의 목표지점까지 보냈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과 물리학에서는 확률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실증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정확한 데이터만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성공하던지 실패하던지.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거의 그럴 것이다"가 통하지 않는다. 숫자로 명확히 데이터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 숫자는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 정확함이 생명이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중도의 단어가 아니다. 엄밀한 정확함만이 통한다. 지구 탈출 속도 11.2km/s를 정확히 넘었는지, 지구중력 가속도 9.80665 m/s² 를 버틸 만큼의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어야 한다. 이 한치의 오차범위도 허용치 않는 과학의 세계에서 우주로 로켓을 쏘고 위성을 올리는 과학자들의 노력이야말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우주시대를 앞서간다는 선진국들의 기술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한국의 과학자들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지지리 별 도움도 못주고 비난만 해대던 우리 사회의 시선을 이번 누리호 발사로 인하여 조금이나마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 명 되지 않은 인력 풀 속에서도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낸 과학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년 5월에 다시 모형 위성을 싣고 궤도 진입 도전에 나설 테지만 그때는 완벽한 성공을 이루어 낼 것이 틀림없다.


실망하지 않는 일, 다시 도전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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