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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5. 2021

빼보면 안다

존재의 가치는, 있는 자리에서 빼보면 안다. 빼낸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고 빼낸 자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빼냈음에도 그 자리에 아무 문제가 없거나 허전하지 않거나 하다면 존재가치가 없었다는 뜻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그래서 중요하다. 존재는 화룡점정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눈동자를 찍는 순간 하늘을 날 수 있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


어떠한가? 나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구사이의 모임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가?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 내가 없어도 그곳이 잘 돌아가는가?


세상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독불장군은 소용이 없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있는 것이 세상이다. 더불어 사는 관계는 사람 사이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 자연과도 바로 이 관계로 의미의 시작이 연결된다. 이 관계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빠진 자리에 대한 가치 평가는 상대방이 한다. 가치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가치는 역할과 권한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층(Hierarchy)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층의 벽돌 한 장이 바로 가치다. 바로 그 벽돌 한 장이 각각의 사람들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벽돌을 쌓는 일에서 어느 위치에 내가 있느냐가 바로 가치를 결정한다. 쌓아놓은 벽돌 중에서도 위치에 따라 건물을 허물어지게 할 수 있는 위치가 있는 반면 중간쯤에 박혀 있으면 한 장 빼버려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전체 건물을 지탱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만큼의 역량을 보유하고 발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의 숫자가 적을수록 각각의 벽돌 가치는 중요도가 커진다. 한 장이 빠져버리면 그 공백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 중에 한 명이 멀리 여행을 가도 그날 밤 찾아오는 어둠의 그림자는 빨리 찾아오는 현상과 같다. 아니 집안에 한 명 없으면 그렇게 편하고 여유로울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집에서 참 억눌리고 참고 살고 있다는 뜻일 게다. 

회사에서는 어떠한가? 사람이 모여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전진해가는 곳이기에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어떻게 배치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무한 피드백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회사이기에 빠진 벽돌을 채워 나가는 일에 한치의 지체도 없어야 한다. 팀원이 하루 휴가를 가도 업무를 대신할 대체자를 지정해놔야 한다. 그것이 조직에서 각 개인의 벽돌 가치다.


다시 되물어보자. 나는 내가 소속된 어떤 곳에서도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말이다. 아니 인정받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능력도 없는데 부지런하여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최악의 상사는 아닌지, 동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스스로 주변을 살피는 능력이 떨어진다. 조직의 관성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내가 있는 자리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지 거울을 보며 살필 일이다. 남의 허물은 잘 도 보면서 내 허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사는 일이다.


그래서 벽돌 한 장의 가치를 위해서 신독(愼獨 ;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시인 윤동주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참 힘들게 사는 것 아니냐?" "그냥 편하게 대충대충 살아!"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신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빠지면 허전하지 않도록 존재가치를 심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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