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r 11. 2020

적응의 그림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인사말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어떠세요?" " 건강하시죠?" "잘 지내시죠?"와 같은 평범했던 인사 건넷 말이 " 코로나는 피해 다니고 계신 거죠?" "코로나로부터 가족들은 안전하신가요?" "코로나 피해서 재택근무하고 계신가요?" "코로나 때문에 사업이 힘드실 텐데 어떻게 버티시나요?"


모든 인사말에 그놈의 '코로나'가 선행사로 등장합니다. 


인사말은 일상을 시작하는 '시작 언어'입니다. 이 일상 언어에 '코로나'가 섞여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 차지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상이 절대적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갑지 않고 달갑지 않은 용어의 섞임입니다. 빨리 분리해내야 할 텐데 그 분기점은 자꾸 멀어져 아득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이 노력하고 참아내고 있는 와중에도 꼭 미꾸라지 같은 존재들이 생겨납니다. 천차만별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개성은 인정해야겠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는 철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빨리 코로나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텐데, 온 지구촌이 감염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라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걱정과 공포보다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여 바이러스 확산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책으로 보입니다.


인사말에서 코로나가 사라지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아침인사에 "잘 지내시죠?" "상쾌한 아침입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라는 긍정의 언어들이 다시 등장하기를 말입니다. 아니 꼭 긍정의 물음에 긍정의 단어로 답언을 하지 않아도 "네 뭐 그저 그렇습니다"라는 평범한 답변이라도 되돌아와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그저 그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표현은 루틴 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 안정된 상태를 설명할 때 주로 쓰입니다. "별 일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어"라는 표현도 비슷할 겁니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평범한 삶"은 쉬울 수 도 있고 어려울 수 도 있는 삶의 형태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어려움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정국에는 이 무뚝뚝한 표현조차 듣기 힘들어졌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듯한 것이 오히려 활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마냥 편한 것, 마냥 즐거운 것, 마냥 행복한 것을 갖춘 유토피아적 환경이라면 인간의 본성은 금방 질리게 됩니다. 좀 더 자극적인 것, 좀 더 어려운 것, 좀 더 도전적인 것을 찾게 됩니다. 긍정적으로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관심을 갖고 부정적으로는 마약과 같은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는 형태로 변화됩니다.


'자유가 자유를 퇴보시킨다'는 '자유의 역설'은 '상상'을 현실세계에 구현하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의 원죄 때문에 끝없이 자극을 받고 해결해 내고 다시 문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사이클을 그리듯 반복되는가 봅니다. 그 순환 사이클은 바로 '적응'이라는 생물학적 진화하고도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나 회사에 적응했다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적합한 삶의 패턴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넓고 깊게 볼 것 도 없이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인 '비만' 문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살기 시작한 20만 년 전, 우리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수렵 채집기에는 고칼로리 음식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지방으로 저장하는 생리 시스템이 생존과 번식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런 시스템은 하나의 적응이었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고칼로리 음식이 사방에 널려 있는 환경에서도 이 적응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 중입니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변화가, 급속한 환경의 변화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만은 그래서 생긴 질병(?)입니다.


하지만 비만이 적응이라고 해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거나 줄이면 됩니다.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의 철칙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몸에는 필요 없습니다.

균형에 못 미치는 몸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음식입니다.


오늘 아침 저의 중력에 대한 저항과 적응은 '69.5kg'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한계 체중으로 설정해놓은  70kg을 넘지 않고 유지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니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겨울을 거의 다 보내고 있지만 한계체중을 넘지 않고 있음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바깥 날씨도 영상으로 가고 있으니 조깅을 하러 운동화 끈을 다시 맬 예정입니다. 2Kg 정도는 더 줄여 겨우내 불어난 체중을 줄여볼 작정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적응하고 맞춰나가고 그러다 보면 패턴이 생기고 그 패턴을 여러 번 거치다 보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모여 삶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며 결국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리게 됩니다. 나의 화폭엔 지금 어느 정도의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요? 밑그림은 제대로 그려낸 것일까요? 그려낸 배경 속의 주인공이 똥배 나온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목표가 있는 밑그림을 그리다 보면 멋진 수채화도 되고 유화도 되며

수묵화도 될 테지요. 하루가 다르게 초목에 물이 오를 텐데 배만 살찌울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겨우내 살 찌운 뱃살의 에너지를 이용해 봄을 맞으러 움직여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봄꽃 만발한 화사한 그림 속을 거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를 저 멀리 물리치고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봄비를 기다린 꽃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