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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0. 2020

봄비를 기다린 꽃처럼

이 아침에 내리는 비는 봄비라 칭할만합니다. 아주 조용히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아직 고여서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도 위 한 켠에 작은 물웅덩이도 이룹니다.


온 대지의 생명들이 기다려온 생명수입니다. 추위로 닫혀있던 대지의 문을 열어주는 그런 비이기 때문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이미 생명의 움틈을 보인 곳에서는 그 생명을 더욱 키우는 용해제로 사용될 그런 비입니다. 오후 늦게까지 올 요량이라 하니 양은 적을지 모르지만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서는 제격입니다.


사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이야 비가 오면 생활이 더 불편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기다린다는 것은 모든 생물과 자연이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공진화의 원리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쓸 만큼의 비가 내리면 자연은 온통 초록의 빛으로 금방 변해버릴 것이고 그 초록은 가슴과 브레인까지도 물들여 산으로 들로 초록을 맞으러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려지던 봄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잊게 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역병에 걸리길 두려워해 두문불출하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 앞에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바깥으로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욕망을 이기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그만큼 인간의 감정을 잡아 흔드는 강력한 도구임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코로나가 득세를 한다 해도 이젠 누가 뭐래도 봄을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움츠렸던 꽃눈을 틔우고 회색빛 대지에 노랗고 분홍색의 꽃들을 펼쳐내 벌과 나비도 깨울 것입니다. 비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지구 역사 46억 년의 시간에서 생명이 발현한 곳이 물이었기에 당연합니다. 생명을 깨우고 키우고 잠들게 하는 것은 모두 물로 대지로 대기로 돌아갑니다. 비는 대지에 펼쳐져 있던 분자들을 융해시켜 바다로 데려가고, 다시 대양의 원소들과 융합시킵니다. 자연의 중재자이자 창조자를 맞이하는 현장이 바로 자연 속에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곧 등장할 자연의 색을 기다리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봄꽃들은 잎도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핍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요? 잎이 나서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를 통해 발화를 하고 열매를 맺어야 식물이 가지고 있는 순환 사이클에 맞는 것 아닐까요? 봄꽃들은 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꽃을 먼저 발화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꽃이 먼저 핀다는 생각은 순전히 인간의 생각임을 알면 우리가 얼마나 "지식의 착각"속에 사는지 눈치채게 됩니다.


사실 자연에서 계절은 선을 그어놓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봄,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여름 뭐 이렇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편리에 의해 만들어놓은 달력에 숫자를 부여하고 절기를 부여했을 뿐입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계절은 연결선상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세상에 꽃부터 피는 식물은 없습니다. 단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울 시기에 차가운 겨울이 와서 식물은 겨울눈을 만들어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꽃을 피울 뿐입니다.


식물은 낮이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장일 식물(개나리 진달래 등 봄꽃)과 낮이 짧아질 때 꽃을 피우는 단일 식물(코스모스, 국화 등 가을꽃), 그리고 광 주기와 상관없이 꽃을 피우는 중일식물(원예품종)이 있습니다. 식물이 특정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은 온도와 광 주기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봄꽃들은 장일 식물이어서 인간의 시계가 봄이라고 하는 시기에 꽃을 피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봄꽃은 꽃향기가 미약해 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곤충을 불러들여 수분을 하기 위함인데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이유도 "종족번식을 위한 경쟁 때문일 텐데 곤충을 유인할 향이 약하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모든 식물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진한 꽃향기를 내뿜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른 봄 피는 봄꽃들의 전략은 다른데 있습니다. 봄꽃들은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꽃을 피워 겨우내 굶주렸던 곤충들을 미친 듯이 달려들게 만드는 전략을 펴는 것입니다. 봄꽃에는 꿀도 거의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곤충들은 더 열심히, 더 멀리 날아다니면서 꿀을 채취해야 합니다. 봄꽃의 입장에서는 가장 현명한 전략입니다. 이른 봄을 지나 모든 식물이 잎이 돋고 꽃을 피우는 시즌이 오면 강렬한 향과 꿀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꽃들과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5월의 장미, 6월의 아카시아, 밤꽃 향기가 강렬한 이유입니다.


자연에는 우리가 아주 하찮게 보는 미물조차도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가장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인간 지상주의의 착각과 오류 속에 제 잘란 맛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리는 빗줄기 하나, 불어오는 바람 한 점, 들려오는 참새의 작은 지저귐, 그리고 내가 지금 쉬고 있는 숨소리 하나까지도 예민하게 듣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코로나 정국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두려움과 공포를 벗어던질 구실을 찾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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