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13. 2022

돈의 가치

요즘 신문 경제면을 보다 보면 숫자 단위로 '경'이라는 단위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익숙지 않은 숫자 단위라 "오타가 났나?"라고 의심이 들기도 하여 다시 읽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 공모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주문액이 1경 518조 원 정도가 몰렸을 것"이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경(京)이라는 숫자 단위가 직감적으로 다가오나요?


경은 10의 16 제곱으로 1만조가 1 경이됩니다. 숫자 10 뒤로 0이 16개가 붙어야 읽을 수 있는 숫자입니다. 10,000,000,000,000,000.

이런 숫자가 한 나라의 경제규모를 이야기하는데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한 기업의 주식을 언급하는데 나오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2년 정부 예산이 607.7조 원입니다. 미국도 2022년 회계연도 예산으로 6조 달러(6,700조 원)를 책정했습니다.  그런데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을 사겠다고 몰려든 기관투자가들의 돈은 최고 공모가를 상정하고 배정된 수식수에 단순 합산한 금액일 뿐이지만 '경'단위를 넘어서는 돈이 몰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있는 영향일까요?


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언급할 것까지 없이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돈의 단위가 너무 커져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숫자 단위에 대한 사회적 둔감을 불러옵니다. 아파트 가격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울시내 30평대 아파트치고 대부분 10억 원대가 넘습니다. 재수가 없는지 제가 살고 있는 중랑구 지역은 아직 8억 원대에 머물러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중랑구는 그나마 최근 2년 사이에 오른 게 그렇습니다. 요즘은 '억'단위의 돈은 그저 일상적으로 듣는 돈의 단위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시설 좋고 주변 환경 좋고 학군 좋은 아파트 30평대가 10억 원 정도 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서울지역 대부분의 아파트 가격이 그렇다는 것은 비정상적임이 틀림없습니다. 대부분 아파트 가격이 다 오르니 집 가졌다고 좋아할 것도 아닙니다. 모두 올랐으니 올랐다고 할 수 도 없습니다. 팔고 다른 곳으로 가봐야 그 비용 그대로 들어갑니다. 수도권을 벗어나 먼 지방으로 가기 전에는 말입니다.  아파트 가격만 올라 세금만 더 내는 개미 수렁에 빠졌습니다. 

오른 숫자에 둔감해지면 마치 그 숫자에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실제로는 빈털터리임에도 주변 숫자가 커져 있기에 자기도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과소비가 나오고 보복 소비라는 말도 나옵니다.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숫자에 예민해져야 합니다. 돈도 숫자입니다. 숫자는 디지털입니다. 하나하나 셀 수 있다는 겁니다. 숫자를 하나씩 세기에도 힘든 '경'이라는 단위가 숫자의 주력 단위로 등장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숫자에 민감하지 않고 무뎌져 있으면 주머니 돈과 은행통장 잔고는 한낫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돈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과 '조'라는 숫자 단위에 매몰되어 내 주머니의 '백'과 '천'단위의 숫자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좀팽이 같이 그렇게 작은 단위에 아웅다웅하다가 어느 세월에 집 사고 번듯하게 사냐?"라고 반문할 수 도 있습니다. "세상 돈의 단위는 천정부지로 달려가는데 저금리의 은행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 게 더 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내 주머니 속에 든 액수를 잘 챙기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돈의 가치가 한없이 떨어지는 시절이지만 돈의 가치는 숫자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용처가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심 한 끼, 소주 한 잔이라도 기꺼이 살 수 있으면 그것이 천금이고 만금이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말은 인격의 거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