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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6. 2020

지식의 착각


우리는 아는 만큼 보고 느낍니다. 경험한 것만 느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라는 상상력조차도 기억을 바탕으로 엮어내는 조율의 다른 표현 형태입니다.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기억에 없기에 인출해내지 못합니다. 청산유수로 말발을 구사하는 사기꾼도 사실 아는 것이 많아야 가능합니다. 물론 깊이가 없어 금방 들통나지만 말입니다.


기억을 채우는 일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 키워드입니다. 기억을 채우려면 부단한 노력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와 넓이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지만 알아가고 느껴지는 감각의 확장에 희열을 느끼는 경지가 되면 그만한 행복이 없습니다.

'미쳐야 사랑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미칠 대상을 연인에 두어도 좋고 사물에 두어도 좋습니다. 미친다는 것은 몰입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몰입하고 집중하면 기억의 창고를 풍부하게 하고 인출을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의 창고를 채워나가는 일을 하다 보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 일어나는 일의 원인과 결과를 다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오류 말입니다. 요즘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 종교의 교주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믿고 복잡성을 무시합니다. 개인의 경험과 의견으로 자기의 지식을 정당화하고 우리의 행동은 정당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고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말합니다.


개인 이해의 착각입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정말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많이 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식 공동체에 의존해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스마트폰의 발달로, 검색하거나 물어보면 알 수 있는 일종의 분업 효과로 인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슬로먼(steven sloman)이 최근 쓴 "지식의 착각"이라는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개별 뇌의 독립적인 작용이 아니라고 합니다. 몸과 세계가 연결되어 지적인 활동을 할 때 함께 움직이는 인지 체계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마음은 몸의 도움을 받듯이, 사회에 쌓인 지식에 의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가진 정보에 기대어 우리의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지향성의 공유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개인의 지능이나 개별 지식보다 지식 공동체의 협력이 더 중요합니다. 위키피디아나 크라우드 소싱 등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을 접할 수 있게 된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양질의 지식 공동체를 구축하기에 좋은 때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공동 지식사회에서 어떠한 정보와 지혜를 받아들여 본인의 것으로 만들고 또한 공동체의 지식으로 내어 놓을까요? 더불어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공동체 지식 덕분에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착각하고 있다면 그 오류를 기꺼이 수정하고 더 양질의 지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의 원소로 돌아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기억의 창고를 채우는 일" 그리고 쌓아놓지만 말고 인출해 공유할 수 있는 아량과 배려가 공존한다면 가장 행복한 소풍이었다 자족할 수 있을 겁니다. 지식에 대해 항상 겸손하고 더 광대하고 광활한 우주로 까지 눈높이를 높여야 할 이유입니다. 곳곳에 숨은 재야 고수들의 겸손함을 배우고, 대중을 위해 아낌없이 지식과 지혜를 펼쳐내 주는 석학들의 노력에 머리 숙여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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