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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7. 2020

차에 대한 반성문

오늘 아침은 차를 운전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오후에 가야 할 행사장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조금 멀어서 부득이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경우가 1년에 10여 차례 정도 될까 말까 합니다만 전철을 타고 출근하며 걸리는 시간이나 차를 운전하고 오는 시간이나 비슷하게 걸립니다. 시간 절약으로 볼 때는 굳이 차를 운전해서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차를 운전해서 출근할 때 할 수 있는 일보다 전철을 타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운전을 하면 오로지 앞을 주시하며 신호등의 바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기껏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간혹 음악만을 듣게 됩니다. 운전하며 먼 산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거나 지나가는 멋진 여성에 시선을 던졌다가는 접촉사고라도 날 수 있기에 신경은 온통 앞 차량의 꽁무니에 가 있습니다.


또한 걷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은 운동부족이라는 멍에에 싸여 뒷전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결국 운전을 하여 출근을 한다는 것은 이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입니다. 출근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고 운동부족을 야기하며 석유에너지를 소모하여 대기 오염을 시키고 신호등과 속도에 집중하느라 신경까지 날카로워집니다. 결국 차는 나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다만 오늘처럼 여러 불편함을 상쇄시킬 어떤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차'라는 놈은 득 보다 실이 많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무인자동차가 나와 보편화되는 시대가 되면 개인별 차량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을 합니다. 내가 필요할 때 오라 그러면 오는 그런 차량이 있으면 굳이 차를 사느라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시스템을 통해 출퇴근 시나 출장, 여행 시 사용하고 놔두면 차량이 스스로 주차장으로 가고 다른 이용자를 향해 스스로 갈 테니 얼마나 유용하겠습니까?


각 가정마다 투입비용 대비 가장 비효율적인 도구가 바로 차량입니다. 몇 천만 원 들여 사놓고 사용하는 시간이 하루에 1시간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출퇴근 한 시간 사용하면 나머지 시간은 차가 주자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비효율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재의 차량 소유 형태입니다. 이것을 간파한 테슬라에서 무인자동차에 기술과 자본을 쏟아부으며 개발에 나서는 이유입니다.


기술과 과학이 진보하면서 인간의 삶을 바꿀 도구들도 모양을 변화시켜 갑니다. 자연이 끝없는 진화의 과정이듯이 인간 주변의 도구들도 계속 변화시켜 맞춰나가는 것이 인간의 창의성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무인자동차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관계로 비효율의 대명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혼란기에 오늘 운전한 차량의 수령이 18년째 되는 녀석(2003년식  SM520)이라 아마 오늘 운전이 이 녀석을 운전하는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무려 100일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신차(더 뉴그랜저)의 출고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고차로 팔까, 폐차시킬까 고민하는 와중에 딜러분께서 멀리 해외로 입양 보내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차량 연식은 오래되었으나 운행거리가 145,000 Km도 안되고 그동안 관리를 잘 해온 터라 폐차시키기에는 아까웠는데 멀리 해외에서나마 누군가의 발이 되어줄 수 있다는데 위안을 삼습니다. 중고차의 진실은 차량 가격을 얼마나 쳐주느냐에 달려있긴 합니다만 말입니다.

어제저녁, 차량의 글로브 박스와 트렁크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참 많은 사연들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차량에는 음악 CD를 넣을 수 있는 장치도 없지만 제 차에는 CD 플레이어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운전석 옆  콘솔박스에 CD가 20여 장 들어 있더군요. CD 한 장 한 장 살 때마다 기대감과 설렘 등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억의 창고를 기어 나옵니다.


그렇게 오늘, 18년을 정들어온 녀석을 마지막으로 운전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연비도 더 좋은 새로운 차를 운전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대기를 오염시키며 출근한 아침, 자연을 향해 반성문을 씁니다. 어차피 내게 다시 돌아올 오염의 순환을 알면서도 얄팍한 편안함에 눈감았던 아침을 사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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