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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4. 2022

뉴스 소비 수준이 "저질, 연성화"밖에 안된다니

어제 다소 충격적인 기사 내용을 접했다.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직업에 따라 보이는 기사가 다를 수 있음은 불분 가지다. 나는 언론사들의 기사 동향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기업체 홍보담당자다. 언론사에서 생산되는 뉴스가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주시해야 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기업 홍보 아이템을 발굴해 드러나게 하느냐가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업무적 시각에 걸려든 뉴스치고는 쇼크에 가까운 기사 내용이었다. 바로 기자협회보에서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국내 포털사이트 1위 업체인 네이버와 콘텐츠 제휴를 한 73개 언론사의 뉴스 데이터를 분석한 기사다. 제목은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 대부분 '저질 연성화' 뉴스"다.


"저질, 연성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지난해 네이버 언론사별 랭킹뉴스 중 전체 페이지뷰(PV) 1위~50위에 올라있는 기사 모두가 그렇다. 상간녀, 신음소리, 레깅스, 성관계, 탈의, 피멍 등 감히 입에 담기 민망하고 낯 뜨겁고 글로 쓰기 망설여지는 단어들이 나열된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다. 지난해 최고 PV를 기록한 기사가 중앙일보의 "이혼 후 '자연인'된 송종국, 해발 1000m 산속서 약초 캔다"였다. 페이지뷰 213만을 기록했다. 두 번째 PV를 기록한 기사는 한국경제신문의 "대구 상견녀 결혼식 습격 사건 - 스와핑 폭로 논란"으로 195만 PV를 보였다.

이 저질의 시대를 어찌할 것인가? 낯 부끄럽지 않은가?


"혼자 고상한 척, 잘난척하지 말라고!" "섹스에 관심 없는 놈 어디 있는가?"라고 들이밀면 할 말은 없다. 현존하는 모든 호모 사피엔스는 섹스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조상들의 후손들임에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온라인 검색하는 이유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보고 웃고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 보니 연예인이나 셀럽들이 뭐 하는지, 뭐 입는지 들여다보고 하는 건데, 너무 예민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라고 무관심해보려고 하는데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의 치부를 까보이는 것 같고 저질의 본성을 들킨 것 같아 모래 속에 대가리 쳐 박아야 할 것만 같은 심정이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를 보여주는데 너무 저질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 같아 낯 뜨겁다. 우리 사회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나 똑같은 바람일 것이다. 이 수준은 그냥 자연히 높아지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The Great Books Program' 독서법이 좋은 예이다. 시카고대학은 석유재벌 록펠러가 1892년 세운 대학이지만 삼류로 소문난 대학이었다. 그러다 1929년을 기점으로 이 대학 출신들이 받은 노벨상이 2000년까지 무려 73개나 이른다. 로버트 허친스라는 총장이 부임하면서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철학 고전 읽기)이라는 '시카고 플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시카고 플랜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인 철학 고전을 비롯한 각종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고전을 읽은 개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학생들의 사고가 변하기 시작하여 위대한 고전 저자들의 사고능력이 그들의 두뇌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의 수준은 하루아침에 혁명적으로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카고대학처럼 진득한 꾸준함과 앞선 자들의 노력이 함께 해야 가능한 엄청나게 힘든 여정이다.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로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자크 모노(Jacques Monod)가 쓴 '우연과 필연(Le hasad et la necessite)'이라는 과학 철학서의 고전을 프랑스에서는 거리의 청소부도 지니고 있다가 잠시 짬이 나면 읽었다고 한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라는 생물학의 오랜 수수께끼를 미시세계의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낸, 과학자의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 프랑스에서는 누구나 읽는 대중서적이었다는 소리다.


우리는 언제 저질의 컨텐츠로부터 관심을 벗어나 기획 다큐멘터리가 페이지뷰 1위로 등극할 수 있을까?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뉴스소비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가 이 힘든 언덕을 넘을 수 있을까? 어렵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수준을 높이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감각적 자극을 통해 흥분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 흥분은 잠시면 족하다. 중독될 정도로 빠져들지 않게 하는 것은 사회의 수준과 사회의 감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쫒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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