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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8. 2022

가까울수록 더 안 가는 이유

서울에 살면서 남산 팔각정까지 한번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글쎄 이런 조사를 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 알 수는 없으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아름 물어봐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에 와서 살기 시작했으니 만 40년을 살고 있는데도 딱 두 번 올라가 봤을 뿐이다.(나만 그런가 ㅠㅠ) 그 두 번도 팔각정까지 만이다. 한 번은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의 언제인지도 모를 기억이고 나머지 한 번의 기억은 2018년 사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모임에서 남산 둘레길 트레킹을 하면서 올라갔던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 서울타워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했고 케이블카도 타보지 못했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40년을 서울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오히려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울 남산을 더 많이 가보는 듯하다. 단체로 관광버스 타고 온다던지, 서울에 있는 자식들 보러 상경했다가 자식들 손에 이끌려 그래도 서울의 대표명소인 남산엔 한 번씩 들러 서울구경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아이러니는 뭘까? 가까이 있으면 더 자주 가게 될 텐데 왜 쉽게 가지 못하는 것일까?


남산의 경우는 일단 접근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가고자 결단하기에 애매한 심리 기재가 작동하는듯하다. 남산은 내 생활 속에 함께 있다는 위안의 착각 때문이다. 옆에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기에 발걸음의 선택지로 채택되기가 쉽지 않다. 주말이라도 어디를 다녀오려고 계획을 할라치면 굳이 남산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가까운 바다가 있는 인천, 강화도도 있고 조금 멀게는 강원도 여러 관광지도 있다. 매일 출근하며 쳐다보는 일상의 한편인 남산으로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산이 주말의 여행지로 선택되기 위해서는 큰 결심을 해야 할 정도다. 반드시 가봐야 할 이유가 작동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외국에서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와야, 데리고 가는 정도의 장소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서울 남산뿐만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회사 건물 1층 로비에 갤러리가 있음에도 1년 중 들어가 본 적이 역시 거의 없다. 참 희한하다. 한 미술 전시가 시작되면 보통 40일 정도 하니 1년에 6차례 정도 전시 기획들이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갤러리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출퇴근하면서 심지어 점심시간에 오고 가면서라도 들릴만도 한데 그게 안된다. 미술에 대한, 예술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부족해서 일까?

'F-crew', 최수진, 일우스페이스 전시

미술에 대한 관심 부족만은 아닌 듯하다. 서소문에 있는 시립미술관은 내가 점심시간마다 방문하던 최애호 장소이기도 하다. 회사 건물 뒷 건물이 시립미술관인 탓도 있다. 심지어 점심 약속을 잡는 많은 경우는 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트 설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식사를 서두르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매일 드나드는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갤러리에는 안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뭘까?


너무 가까우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쉽게 무시하고 마는 것일까?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때문일까?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는 항상 쉽게 접하지 못했던 것,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찾는데 집중을 할 텐데 갤러리의 전시물은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되는데 왜 발길이 가지 않는 것일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겠다. 밖에서 점심식사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테이크아웃 한 따뜻한 커피 한잔 들고서라도 갤러리에 들러 한 작품 앞에 서 있어 보자. 하루에 한 작품 앞에서 5분이라도 서 있어 보자. 그림이 말을 걸고 작가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감성도 풍부해지고 시야도 넓어질 것이다. 내가 마음을 내지 못했고 내가 발걸음을 그곳으로 디디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지만 가지 않았고 만나지 못했던 것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볼 일이다. 너무 가까워 소홀히 대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찾아볼 일이다. 그리고 찾아가자. 문안인사를 드리자. 꽃피는 새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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