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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7. 2022

대통령선거 후에 보고 싶지 않은 일들

눈에 선하다. 이번 투표로 대통령이 확정되고 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이다. 분명 모두가 즐기는 축제 분위기는 아닐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저 정치판 암투의 끝판왕들의 행태는 마귀 소굴의 흥분 그 자체다. 살아남아야 하는 절규만이 있다. 죽고 죽이는 전쟁통에 인간성이 어디 있고 배려가 어디 있느냐는 심사다. 오직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정치판이 되다 보니 물 불 안 가리고 상대 죽이기가 하늘을 찌른다. 죽창 안 들고 소총만 안 들었을 뿐 입으로 죽이고 글로 죽이고 가짜 뉴스로 물어뜯고 비방하고 --- 이런 놈의 세상이 다 있는가?


"독야청청한 것처럼 잘난 체하지 말라고?"

"너도 그 안에서 숨 쉬고 사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하고 있냐고?"

"그렇게 소극적이고 비관적으로 사회를 보니 개혁이 안되고 있는 거라고?"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 결국 너의 수준인 거 몰라?"

"정치란 속성이 원래 그래. 치고받고 싸우고 그러다 타협하고"


하지만 근래의 혐오 정치는 점점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이 혐오(嫌惡)는 투표가 끝나고 대통령이 결정되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더 심하면 심했지.


자기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많은 지지자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확진자 사전 투표 혼란을 놓고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다. 선거에 지는 측이 승복하지 않고 달려들 빌미를 제공해버렸다. 선관위에서 아무리 공정을 이야기하고 부정한 일은 없었다고 사과를 해봐야 변명이 통할리 없다. 득표 격차가 적을수록 이 꼬투리는 반대편 사람들의 목청을 높이는 확성기가 될 것이다.

투표에서 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를 축하할 수 있을까? 투표의 득표수조차, 지고 이기고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 사회가 수용해낼 수 있을까? 서로서로 그동안 고생했다고 어깨를 다독여줄 수 있을까? 이젠 끝났으니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같이 손잡고 노력해보자고 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다. 못된 놈, 죽일 놈으로 비하하고 깎아내려 상대방을 포지셔닝했는데 선거 끝났다고 하루아침에 멋진 놈, 훌륭한 놈이 될 수는 없다. 더 비난하지는 못하고 그냥 개무시하는 수준을 견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광화문에는 항상 정권이 바뀌면 선거에 진 쪽 진영의 데모판이 굿판처럼 벌어지는 일이 반복되게 된다.


제발 이런 저급한 선거판의 여론몰이는 끝낼 수 없는가? 선거 끝나고 득표를 적게 한 진영의 세력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나가는 일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판이 끝났으면 판을 정리해야 한다. 판 벌어졌을 때 일어났던 무수한 정쟁도 같이 묻어야 한다. 조금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조금 더 다수를 위한 노력을 하다보니 격해졌을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모두가 잘 되고자 벌였던 설전이므로 그 과정에 나왔던 좋은 점들은 상대방이 내놓은 것일지라도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긴 자, 진 자 모두 함께 수용해야 할 것들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면 선거 후에 광화문에 모이는 과거의 습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런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되든 되고 나면 믿어보자. 뒷머리 잡고 끌어내릴 것이 아니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힘을 보태 앞으로 나아가게 하자. 상생하는 길이 우리가 살 길이 아니겠는가? 지구촌에 신 전체주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는데, 내분으로 지리멸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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