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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08. 2022

골프는 운동일까? 사교일까?

아침 6시 20분, 출근길 전철역 플랫폼.

이른 아침임에도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꽤 많다. 전철 출입문 표시 구역마다 사람들이 2-3명 이상씩 줄을 서 있다. 참 부지런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내가 항상 타는 전철 출입문 번호는 4-4. 환승역에 도착했을 때 환승 플랫폼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오늘도 계단을 걸어 플랫폼으로 내려오는데 저 멀리서 골프 스윙 연습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굳이 전철역에서까지 몸을 써가며 스윙 연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딱 봐도 초보의 폼이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열정이 넘쳐나서 그런 탓일 거다.


그런데 가만히 회상해보면 전철역 플랫폼에서 골프 스윙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탁구 연습 스윙을 하거나 테니스 치는 연습 스윙이나 자세가 중요한 볼링 자세를 반복하는 사람의 모습은 내 평생 본 적이 없다. 맨손 체조하거나 벽에 기대어 스트레칭을 하는 어르신도 가끔 목격되기는 하지만 유독 골프 스윙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전철 플랫폼은 골프 스윙 전용 연습장인가?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전철 플랫폼에서 장우산으로 골프 스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낙없이 보게 된다.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엔 골프가 운동이 아니라 자기의 지위를 보이는 허세로 자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골프라는 운동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나도 골프채 잡은 지 20년이 넘었고 보기 플레이어 정도는 된다.) 거실에서 혼자 빈 스윙 연습하는 거나 연습장 가서 땀 흘리며 운동하는 거랑, 뭐 스윙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전철역 플랫폼일지라도 연습 스윙을 하는 거랑 거기서 거기 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와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전철 플랫폼은 골프 스윙 연습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골프 스윙 연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윙 연습을 한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은 어떤 심리'가 작용함이 분명하다. "나도 이 정도는 하고 있어"를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 플랫폼 스윙자의 외모를 보건대 연령대는 40대 초중반 정도가 많은 듯하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일 나이 때이고 그 나이에 골프채를 처음 잡은 사람들이 많다.

남자 사회에서 골프를 한다는 것은 직장에서나 비즈니스에 있어 일정한 지위에 있어야 함은 자명하다. 요즘이야 스크린 골프의 확산으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골프를 치지만 아직까지는 골프를 치는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고가의 장비값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신발이며 옷이며 갖춰야 할 것들은 또 왜 그리 많고 비싼가? 골프공 하나만 해도 짜장면 한 그릇 값이다. 한번 라운드 돌고 나면 3-5개는 오비 내고 해저드 빠트려서 잃어버리니 짜장면을 오비 지역에 쏟아붓고 오는 셈이다.


그린피는 또 어떤가? 인천공항의 모 골프장은 주말 오전 시간대 그린피가 29만 9천 원이다. 오후 마지막 시간대가 2만 원 싼 27만 9천 원이다. 거기다 카트비 9만 원, 캐디피 14만 원이다. 카트비와 캐디피를 4명이서 나눠서 낸다고 해도 1인당 35만 원이 든다. 순수 골프비용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아침에 국밥이라도 먹을라치면 18,000원, 골프 끝나고 점심이라도 먹을라치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클럽하우스 식사는 거의 바가지 수준이니 골프장 근처 식당을 찾아 김치찌개라도 같이 먹어야 한다. 결국 주말에 골프 한번 치는데 톨게이트비, 기름값 등 이것저것 비용을 합하면 가볍게 50만 원에 다가선다. 월급쟁이 주말에 골프 한번 나가는데 40만 원 이상 쓴다고? 한 달 용돈을 다 쏟아부어야 한다.  월급쟁이는 현실적으로 골프를 치면 안 된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물론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한 번 운동 나가는 사람도 있고, 이 정도 비용이야 기꺼이 지불할 능력이 되는 월급쟁이도 있긴 할 거다. 가뭄에 콩 나듯 할 테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의 골프는 비즈니스 접대 문화가 만든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골프장은 사교장이 됐다. 자기돈 내고는 부담스러운데 비즈니스로 섭외다 접대다 명목으로 회사 접대비 처리를 하면서 가능해진 운동이다. 사실 전문 프로선수가 아닌 주말 골퍼들한테 골프는 운동도 안된다. 5시간 정도 라운딩 동안에 스윙 80-100번. 이게 무슨 운동인가 말이다. 라운딩 내내 걸으면 운동되지 않느냐고?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경기 진행 속도가 늦어져 뒷 팀한테 피해를 준다고 카트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트 타고 골프 치면 그린 주위 배회하고 오비 나서 산속을 헤매는 것까지 합쳐도 5,000 보도 못 걷는다. 이게 무슨 운동인가?


돈 많이 들어, 시간 많이 뺏겨, 운동도 안돼, 볼 안맞아 신경질나고 스트레스 받아 . 뭐 이런 놈의 종목에 골퍼들은 그렇게 새벽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까? 비가 와도 나가고 심지어 눈이 쌓여도 칼라 볼을 들고 나가서 치고 온다. 한국은 골프에 미쳤다. 전철 플랫폼에서 골프 스윙 연습을 해야 한다. 초짜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돈이 아까우니까 너무 비싸니까 본전을 뽑으려면 미친 듯이 연습해서 좋은 스코어가 나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위안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가 비싼 것이 전철 플랫폼에서 빈 스윙을 하게 하는 원흉이었구나. 참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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