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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9. 2022

갑자기 차 번호 4자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난 주말, 김포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제주를 다녀왔다. 일요일 오후, 귀경을 하여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정산기를 통해 주차비 정산을 위해 줄을 섰다. 내 앞에 2명, 내 뒤로는 3명이 따라 섰다. 자동정산기 기계 속도가 월등해서 그런지 1명당 1분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내 차례다. 화면에 차량번호 뒷자리 숫자 4개를 입력하란다.


그런데 갑자기 내 차 번호 뒷자리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뒷 3자리는 떠오르는데 앞에 한자리 숫자가 안 떠오른다. 그냥 2888을 입력하니 "없는 번호입니다"라고 안내한다. 숫자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했는데 틀리다는 안내멘트가 나오니 더욱 당황스럽다. 어!! 이런 ㅠㅠ 간단한 차량 번호 숫자 4개조차 떠오르지 않는다니. 뒤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더욱 긴장해서 그런지 이젠 뒷자리 숫자까지 헷갈린다. 다시 6888인가? 무작정 눌러본다. 역시 없는 번호란다.


이런 황당한 순간이 나에게 닥칠 줄이야! 두 번이나 차량번호를 잘못 입력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뒤에 줄 서있는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뒤통수에 꽂히는 듯하다. "혹시 차량 절도범으로 의심하는 거 아냐?" "자기 차 번호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운전을 한다고?"라고 수군댈 것 같은 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들리는 듯하다.


계속 서 있다가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민폐일듯하여 일단 "먼저 정산 하시라"고 하고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뒤에 서있던 대기 줄이 3명 이상 더 늘지는 않았다. 맨 뒤로 다시 가서 줄을 서면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자책을 넘어 나 자신에게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내 차례가 다시 됐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심호흡을 하고 차량번호를 떠올렸다. 그제야 "그래 4888이지" 번호 숫자가 생각났다. 주차비 42,100원 나왔단다. 신용카드 결제를 하고 정산기를 빠져나왔다. 

휴대폰 기능의 향상으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나만해도 집에 아이들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는 아이들 이름이 곧 아이들 전화번호다. 숫자로 기억되지 않고 대상의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량번호는 휴대폰에 입력되어 전화 걸듯 하는 숫자가 아님에도 잠시 기억나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항에서 집에까지 1시간여 운전하며 오는 동안, 계속 이 기억의 떠올림에 사라진 숫자가 맴돌았다. 차를 바꾼 지 만 2년이 되었으니 차량번호가 바뀐지도 2년이 되었다는 거다. 출퇴근할 때는 전철을 이용하고 주말용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사실 차는 가끔 만나게 되는 물건일 뿐이다. 주말에 골프를 가지 않거나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는 2~3주가량 지하 주차장에 서 있을 때가 많다. 자주 만나지 않아서 차량 번호까지 지워지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깜박깜박 생각이 안나는 경우가 발생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헷갈려 잘못 누른 경우도 있다. 술 취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번호를 누르다 숫자가 잘못 눌러져 삐삐 거리게 되면 순간 당황하여 다섯 자리 숫자가 뒤섞여 버린다. 현관문 정도야 매일 한 번씩은 누르는 숫자이니 사실 머리보다는 손가락이 기억한다. 특별히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번호를 찾아가서 누른다. 근육에 기억이 저장된 경우다. 


사람 이름을 까먹는 경우도 이제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안면은 있는듯한데 이름과 얼굴이 일치되지 않는다. 그저 " 아!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정도의 상투적인 인사말을 건네고 헤어진다. 그리고는 "저 사람이 누구지? 이름이 뭐지?"하고 기억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벌써 치매의 전조증상을 겪고 있는 건가? 정신의학과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상태 점검을 해야 하는가? 나이 60대를 바라보니 정신건강 상태 점검을 해봐야 할 때가 되긴 했다. 깜박깜박 잊는다는 것과 기억상실과 치매의 상관관계는 분명 브레인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연결고리가 있을 터다.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기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공부로 충만할수록 기억의 연결고리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기에, 넋 놓고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재검검해야할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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