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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9. 2020

목련나무의 디테일

요 며칠은 아파트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쳐다보는 것이 있습니다. 옆집 아가씨는 아니고요.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아파트 뜰에 심어진 목련나무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매일 눈여겨 쳐다보지 않고 흘려보게 되는 나무입니다. 아파트 입주할 때부터 조경용으로 심어졌으니 벌써 20년이 넘는 수령이 되었습니다. 제 눈에 보인 것만 20년이 넘었지 조경용으로 심어질 당시도 상당히 자란 녀석을 데려왔을 테니 수령이 적어도 30년은 족히 넘었을 듯합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아파트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느라 큰 줄기를 놔두고는 숭덩숭덩 잘라놔서 나무가 살아나기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목련나무의 가지도 조경사의 가위 끝을 벗어날 수 없었는지 굵은 줄기를 남기고는 모두 잘라져 나갔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가 사는 아파트 동 뜰에 있는 3그루의 목련나무 중 현관문 쪽에 있는 녀석은 가지를 다 잘라낸 중에 털봉숭이 몽우리를 달고 있는 몇 가지만 남겨놨습니다. 조경사의 배려일까요? 목련꽃 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입주민을 위한 배려일까요? 

2019년 4월, 찍었던 목련꽃입니다

그래서 그 한 가지에 남아있는 버들강아지 같은 목련나무의 솜털에 갇혀있는 순백의 꽃을 더욱 기다리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난 겨우내 뽀송뽀송한 솜털의 외투를 달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부터는 솜털 외투 끝에 하얀 색깔이 보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하얀 얼굴을 내밀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목련나무는 지난봄에 핀 꽃이 진 자리에 가을엔 씨앗을 남기고 겨울엔 그 자리를 솜털로 덮어 버들강아지처럼 꽃이 필 자리를 보호합니다. 햇살의 강도가 세지고 비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 솜털 이불속의 목련은 그 안에서 꽃을 돋아냅니다. 그리고 그 꽃의 힘으로 외투를 벗고 하얀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두꺼웠던 털외투를 모두 벗고 있는 상태입니다. 목련의 두꺼운 겨울옷은 얇은 솜털 옷으로 대체가 됩니다. 솜털 옷을 두 개나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목련나무 아래에는 콩깍지 같은 목련의 겨울 털외투들이 후드득 떨어져 있습니다. 두께도 있고 상당히 딱딱합니다. 겨울을 지켜낸 귀한 바람막이였으나 지금은 그 역할을 다하고 봄의 외투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외투의 모양새가 똑같아, 겨우내 있던 솜털 같은 뭉치가 열려 꽃이 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보입니다. 관심을 갖고 하나씩 들여다보아야 디테일이 보입니다. 무심히 지나쳐온 온갖 일상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일입니다. 그동안 실체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신비이고 기적입니다. 경이로움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 도태되어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존경과 경이를 표하고 들여다보면 모든 것에 오묘한 순간순간이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세상 풍경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솜털 같은 하늘거림"같은 인간의 마음에서 발원합니다. 작은 미풍에도 반응하는 흔들림은 곧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놀라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고 대나무 같은 곧음이 없어 지조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여림의 표현이기도 할 겁니다.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바로 긍정의 시선이냐 부정의 시선이냐의 높이입니다. 물론 중용과 균형의 시선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같은 현상을 놓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부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삶의 의미를 접어야 할 정도로 초라해집니다.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질문할 가치도 없이 긍정의 시선일 겁니다.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절대 진리입니다. 제한된 시간을 사용하는 데는 긍정의 시간도 부족합니다. 부정의 시간으로 소모할 틈이 없습니다.


아파트 뜰에 서있는 목련나무는 그래서 긍정을 주고 초록을 주고 그늘을 주는 행복의 나무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합니다. 행복하다고 최면을 걸고 즐겁다고 생각을 하면, 생각한 데로 원하는 데로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비바람의 폭풍이 예고된 아침입니다. 그 거센 바람이 코로나를 데려가서 내일이면 맑고 밝은 하늘 아래 마스크를 벗고 큰 숨 한번 제대로 쉬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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