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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0. 2020

미명 속에 숨은 춘분의 과학

누가 뭐래도 봄일 테지만 춘래불사춘 속에 있습니다. 심리적 추위는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정도를 넘어 겨울 외투를 아직도 벗지 못하는 현실에 까지 그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놈의 코로나로 꽁꽁 싸매고 다니는데 익숙해져 봄이 옆에 다가와 있음조차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동녘의 산머리를 넘은 태양이 봄을 재촉해 시간마다 연초록의 색상이 더해지고 있음에도 회색 도시에 사느라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과 더불어 세상의 색을 바꾸는 결정적 존재가 태양입니다. 태양은 지구의 에너지원입니다. 에너지는 온도차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온다"는 인문학적 표현의 자연과학적 해석은 태양 빛의 세기가 점점 늘어나고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알게 모르게 아침의 길이가 빨라졌다는 것을 느끼셨나요? 오늘이 바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입니다. 어쩐지 아침이 일찍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춘분(春分)은 한해의 절기상 네 번째에 해당합니다.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을 전후합니다.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 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북반구에서는 춘분점에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므로 이때부터는 낮의 길이가 밤이 길이보다 길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춘분과 추분의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대략 같다는 의미상의 같음이지 정확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춘분과 추분에는 낮의 길이가 8-9분 더 깁니다. 이유는 낮과 밤의 기준인 일출과 일몰 시간 때문입니다. 일출은 해의 가장 윗부분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하면서이고 일몰은 반대로 해가 완전히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춘분과 추분은 해의 중심이 하늘의 적도에 오는 날입니다. 춘분이어서 해의 중심이 지평선에 올 때는 이미 해의 절반이 뜬 다음이니 당연히 시차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낮과 밤의 길이가 정확히 12시간씩 같은 날은 춘분 일보다 3-4일 전이 됩니다. 낮과 밤이 같았던 날은 지난 월요일이었던 것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에 대한 진실은 엉뚱한 날에 있었고 이미 지나갔던 것입니다.


계절이란 무엇일까요? 태양의 기울기 각도에 따라 24개의 의미를 부여하여 자연을 읽어내고자 했던 선인들의

혜안은 무엇을 알고 싶었을까요? 따뜻함과 차가움의 경계를 알면 바로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일까요?


호모 사피엔스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치환하는 상상력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의했다는 것입니다. 지구 표층에 사는 생명체들은 태양계의 운행에 생명을 맡기고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구 역사 46억 년을 진화해 왔지만 그 역사의 시간에 전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어느 생명체 치고 본인의 의지에 의해 등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무한대의 확률 중 하나로 인해 이 세상에 등장했고 하나의 존재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이라는 고전적 해석은 이미 100여 년 전 아인슈타인에 의해 산산이 깨져버렸습니다. 시간은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른 흐름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이 재깍재깍 가는 것을 보고 "시간이 흐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시간에 대한 가장 일반적 생각입니다. 하지만 빅뱅 이후 우주가 가속 팽창하면서 시간의 방향성이 생깁니다. 인문학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의 방향성의 한 예입니다.


그러나 과거 현재 미래가 선을 그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명확히 구분되어지는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현재라고 하지만 현재란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라고 표현될 뿐입니다. 현재가 계속 흘러 과거가 될까요? 우리에게 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한 기억에 지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과거는 사진 속에 남는 거라 한 것이 아닐까요? 끝없는 질문이 연속되는 아침입니다.


춘분의 시간을 끌어들이다 보니 시간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계절의 경계와 전환점에 서 있으니 이제 따뜻함을 향한 시간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비도 내리고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바람도 스쳐가겠지만 그저 스쳐갈 뿐일 겁니다. 깊이를 알아간다고 하지만 결국은 먹고 자고 싸고 웃고 우는 것이 사는 모습입니다. 유기체로서의 존재,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습니다. 얼마나 비우고 얼마만 채워 넣을까요? 내 삶의 시간을 말입니다.


길어지는 태양의 빛으로 선명하게 채울 일입니다. 질량은 없지만 에너지를 가진 광자의 능력을 채워 넣어 무한한 에너지로 활용해야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살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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