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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1. 2022

만우절인데, 싱거운 미소라도 지어봤으면

오늘은 선의의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고 그 거짓에 속아주고, 기발한 발상에 기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다. 만우절(萬愚節, April Fools Day)이다. 뭐 법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용인된 날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사회의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웃음을 위해 남을 속여도 되나?"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웃겨야 돼?" 등의 부정적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여유가 없고 웃음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아니 한국 사회는 일상이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어 웃을 여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 일상이 만우절이니 꼭 어떤 하루를 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만우절 하루가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거짓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니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포장된 만우절 거짓말까지 포용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우리는 만우절 거짓말임을 눈치채게 되면 싱거운 웃음이라도 지어주기보다 오히려 화부터 낸다.


그만큼 많이 속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마저 있다.


지금은 만우절이라고 해서 소방서에 불났다는 거짓 전화를 하는 사례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만우절에 특히 거짓 화재 전화가 그렇게 많았다고 한다. 만우절에 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가장 저질의 장난으로 사용했던 과거의 전례가 아닐 수 없다. 수준 낮은 장난은 짜증만 날 뿐이다. 


만우절 웃음의 핵심은 위트와 재치, 유머의 기발함에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발상으로 의외성을 자극하여 평소의 생각과 관념을 깨트리는 것이다. 영국의 BBC 텔레비전은 매년 만우절 방송으로 유명하다. 올해는 어떤 아이디어의 소재로 만우절 뉴스가 나올지 기대하게 만들 정도다. 대표적 사례가 그 유명한 스파게티 나무 사건이다. 1957년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에서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방영했는데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스파게티 나무의 재배법을 물어왔다. BBC는 2008년에, 하늘을 나는 펭귄이라는 페이크 동영상을 만들어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올렸던 적도 있도 있다. 보통 이런 유머러스한 만우절 방송은 오전에 내보내고 오후에는 장난임을 알린다. 공신력 있는 방송 매체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신뢰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들이 상사를 골탕 먹이는 만우절 이벤트로 1985년, 미국의 '선 마이크로 시스템즈' 회사 사례가 있다. 당시 에릭 슈미트 부사장이 출근했는데 사무실이 사라지고 없었다. 찾아보니 사무실이 회사 정원에 있는 연못으로 옮겨져 있었다. 직원들이 전화, 컴퓨터는 물론 사무실 집기 모두를 연못 가운데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직원들이 슈미트 부사장에게 보트와 노, 구명조끼를 건네주었고 부사장은 연못 가운데 떠 있는 사무실로 노를 저어가야 했다. 그다음 해 만우절에도 슈미트 부사장이 출근했더니 사무실 안에 자동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전날 저녁, 직원들이 자동차를 분해해서 부사장이 퇴근하고 나서 사무실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이 회사는 만우절을 종업원 몰입(Employee Engagement)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만우절 장난이 적격이었던 것이다. 이 이벤트는 경영자들이 직원들의 장난을 받아들여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 기업에서 이런 만우절 이벤트가 벌어졌다면 아마 기획했던 직원들은 모두 사표를 써야 했음이 틀림없다. 아니 아예 이런 발상 자체를 하지 못하거나 시행하려고 시도조차 못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웃음을 만들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웃지 못하면 웃을 일을 만들어야 함에도 우리는 웃을 일 자체를 포기하고 살고 있다. 귀찮고 웃고 싶지도 않다? 너무 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고 해도 가끔은 기상천외한 일로 크게 한번 웃어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뻘짓해서 웃게 하는 정치권의 썩소는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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