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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31. 2022

조율

기타를 고등학교 시절, 처음 접했다. 사실 배운 것도 아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친구 형이 치던 기타가 놓여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놀았다. 그 당시 친구네 집에 같이 놀러 다니던 다른 친구 녀석은 음악적 재능이 있어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칠 줄 알아서 그 녀석이 기본 코드 몇 개를 가르쳐주었다. 처음 잡은 기타 코드는 C-Am-Dm-G7이다. 이를 반복해서 치면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반주가 된다. 이 코드를 가지고 오승근의 '사랑을 미워해' 반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 당시 같은 코드를 가지고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래서 나의 첫 기타 애창곡이 '사랑을 미워해'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교회 오빠 시절이었다. 기타 치며 찬송가 부르는 오빠는 인기짱이었다. 그 인기를 얻고자 손가락에 물집 잡히고 굳은살 생길 때까지 기타를 쳤다. 그런데 당시, 나는 집에 기타가 없었다.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기타를 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음악적 재능도 없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집에 기타가 하나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 집에 기타가 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새 기타는 아니었다. 먼지 풀풀 쌓이고 기타 줄은 녹슬어 있는 폐품 수준의 중고 기타였다. 아마 이웃집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것을 얻어다 놓은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하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기타인지라, 줄이 안 끊어지고 붙어있는 것이 신기한 정도이니 당연히 조율이 되어 있을 리가 없다. 음을 맞춰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에도 튜닝 어플이 있어 음을 쉽게 맞출 수 있지만 40년 전에는 절대 음감에 의존해야 했는데 나는 어떤 줄에 어떤 음을 기본음으로 해서 조율을 하는지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안다고 해도 음의 차이를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내가 기타 치는 녀석을 제일 부러워했던 부분이 바로 기타 튜닝하는 것이었다. 항상 기타를 손에 잡으면 줄마다 음을 조율하고 코드를 잡고 치면 신기하게 화음이 맞았다. 내가 기타를 몇 번 치다가 중도에 그만둔 것도 바로 이 기타 조율을 못하는 데 있었지 않나 싶다.

아마 튜너와 튜닝 어플이 없었으면 지금도 나는 조율을 못해 기타를 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조율은 음을 맞추는 것이다. 조화다. 특히 줄을 사용하는 현악기는 줄이 조금씩 느슨해져 소리가 낮아지기 때문에 조율은 필수다. 줄마다 정확히 제 음을 내지 못하면 화음이 맞지 않는다. 악기로써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음이 낮아지는지, 그래서 다른 음과 부조화가 발생하는지를 귀로 듣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조율을 해야 한다.


악기 하나에서도 인간의 삶과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조율적인 삶이 리듬도 원만하여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 주변과의 부조화는 불협화음을 내는 악기와 같아 신경질과 갈등을 유발한다. 해현갱장(解弦更張 ;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의 조율은 그래서 필요하다. 조율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조율은 넘치면 덜고 부족하면 채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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