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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4. 2022

꽃구경도 못했는데 벌써 꽃잎이 떨어집니다

지금 바깥세상은 온통 꽃소식입니다. 벚꽃이 만개한 진해를 비롯한 남녘의 명소를 포함하여 꽃잎을 중간쯤 연 서울의 석촌호수길까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꽃이 사람을 부른 건지, 사람이 꽃을 부른 건지 헷갈릴 만큼 꽃과 사람의 숫자가 비슷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꽃피면 꽃을 보고 살아야지. 방구석에 갇혀 휴대폰만 쳐다볼 수야 없지" "코로나19도 이제 엔데믹으로 가고 있는데 콧바람이라도 쐬며 슬슬 적응해야 하지 않겠어?"


사람의 심리는 참 무섭습니다. 잊기도 잘 하지만 억눌려온 심리가 풍선효과처럼 터져 나오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코로나19의 감염 진행 속도 및 과정의 추이를 보건데, 새로운 변종이 무서운 기능을 다시 장착하고 재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는 일반적인 시각 속에, 여행의 본능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인산인해로 몰려가고 있는 제주의 실상이 그렇고 꽃 만개한 남녘의 명소마다 전해지는 사람 소식을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못하게 하고 막아놓게 되면 반드시 다른 쪽으로 개구멍이라도 뚫고 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나아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까지 '죽음'이라는 명제를 던져주는 기상천외한 사건이라 선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태조차도 묶어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백신 접종을 통하여 바이러스의 힘을 약화시켜 놓았고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며칠 앓고 넘어가는 독감 수준으로까지 내려왔다고  판단하는 순간, 여행의 벽을 넘고자 하는 선구자들의 발길은 이미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일단은 국내의 꽃구경으로 시작하는 모양 샙니다. 벚꽃이 그 시작을 알렸고 곧이어 산기슭을 뒤덮을 진달래를 따라나설 겁니다. 그리고 온 산하가 꽃향기에 휩싸일 때쯤이면 공항으로 캐리어 끌고 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꽃보다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꽃은 순간이지만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여운은 꽃 그 이상입니다. 여행은 사람 사는 냄새, 사람 사는 모양을 공유하고 혼합하는 삶의 믹서기와 같습니다.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입니다. 필 때는 화사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모습은 딱 십 일 동안입니다. 꽃은 시간입니다.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애타게 합니다. 꼭 봐야 하는 조바심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양지 녘에 피었던 하얀 목련이 벌써 잎을 떨구고 있습니다. 이제 막 꽃소식이 전해지는 것 같았는데 벌써 꽃잎을 열었던 존재들은 대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초록빛도 없는 삭막한 나뭇가지 끝에서 흰색의 탐스런 자태를 자랑하던 목련 꽃은 질 때 너무 처절한 모습입니다. 흰색 잎이 갈변되어 목련나무 아래에 흩어져 있습니다. 핏빛으로 변한 듯하여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꽃비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에 그 핏빛 존재를 내려놓습니다. 열흘의 빛남을 끝내고 그렇게 대지의 색을 닮아갑니다.


꽃잎이 진 자리에 초록의 새순들이 돋아납니다. 개화의 시간을 늦추는 현명함으로 인간의 관념에 자극을 주어온, 꽃의 역할을 끝냅니다. 발끝에 놓인 갈색으로 변한 목련 꽃잎을 보며 살아온 삶을 반추해 봅니다. 꽃처럼 화려했던 과거의 추억에 향수만 뿌리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초록의 풍성함으로 만든 그늘이 꽃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목련 꽃과 향기는 그렇게 추억의 책장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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