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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1. 2022

장례식장에서 위로의 말하기가 힘든 이유

보통 환절기에 어르신들의 부고를 자주 받게 된다. 급변하는 일교차로 인하여 신체 기능이 제대로 적응하는데 문제가 생기고, 이는 곧 면역 반응과 연결되어 건강상태를 끌어내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코로나가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부고가 많은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나마 이 환절기는 화사한 꽃빛으로 불든 계절이거나 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으로 물든 기간들이라,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위로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심사도 달래줄 수 있어 다행이다. 자연의 원소로 회귀하는 일은, 그렇게 세상에 화사함을 보태어 산 자들의 시선을 위로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지난 며칠,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가 여럿 있었다. 부득이 가볍게 인사치레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기꺼이 빈소를 찾아 위로를 나눠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근래 몇 건의 부고에는 반드시 빈소를 찾아 지인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안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빈소를 찾아 예의를 표하고 유족들을 만나면 특별히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한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저 묵묵히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아주는 행위만으로 위로의 무게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아프셨나?"는 의례적인 말로 대화의 물꼬를 열지만 너무 상투적이다. 부고라는 것이 갑자기 닥치는 일이긴 하지만 원인을 물어볼 만큼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이기에 민망할 따름이다. 그렇게 각자 정신없이 살다가 이렇게 불쑥 부고를 접하고 화들짝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우리의 일상이기에 더욱 낯 뜨겁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실 겁니다" 등등 상투적인 문구가 있지만 이런 말은 차마 꺼내기가 그렇다. 더구나 가까운 사이의 관계였다면 더욱 그렇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심전심, 염화시중의 행동으로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게 보통이다. 


부고 때와는 달리 결혼식과 같은 경사의 경우는 행동보다는 말이 우선한다. "와우! 아들 장가보내는 것이 아니고 네가 장가가니? 이렇게 젊어 보여도 되는 거야?" "좋겠다. 새 식구도 생기고" 등등 온갖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말들을 떠벌이게 된다. 결혼식장은 말이 분위기를 좌우하는 현장이다. 

감정의 표현에 있어 상황과 사안에 따라 달리 전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유독 장례식장에서의 말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말로 위로되는 자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은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곳이다. 분위기의 전환에 있어 말없이 행동만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혼식장은 시끌벅적하다. 말이 우선하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부고에는 장례식장을 찾아 말없이 두 손 잡아주고 어깨를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다. 그 행위만으로도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의례(ritual)가 된다. 의례는 감정을 통제하고 행동을 정의한다. 공감하게 한다. 그것이 위로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부고에는 먼길 마다하지 않고 가야 한다. 그 발길이 관계를 쌓고 사람 사는 이유를 설명한다. 말이 필요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 사는데 참 중요한 일이다. 라일락꽃 만발하여 향기가 천지를 혼동케 하고 길가에 떨어진 벚꽃잎이 꽃길을 만들고 있는 이 시간을 걷게 해 주신 떠나가시는 분께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산다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주심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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