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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8. 2022

거기 가면 이 노래를 들어야 돼

세대에 맞는 노래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요즘에는 트로트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 BTS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팬덤도 생겨 세대별로 좋아하는 노래들에 선을 긋기가 애매해지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연령대에 따라 줄을 그으면 그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의 종류들을 범주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호불호의 편차가 큰 것이라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Earworm처럼 귓전을 맴도는 음악이 존재합니다. 당연합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음악들 위주로 듣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도 비슷하게 작동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라디오 음악 채널에서 가끔씩 예전 몇 년도에 빌보드 차트 10위권 안의 노래들을 소개하면서 추억을 소환해주기도 합니다.


83학번으로 586세대의 전형인 저에게도 earworm처럼 흥얼대는 팝송들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서 노래는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저를 가두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때까지 학교 방송국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방송반이야 조회시간에 마이크 설치하고 행진곡 틀어주는 정도의 기능적 일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곳에 있던 장비를 통해 여러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학 방송국 시절은 제가 음악을 접하고 빠져있게 되는 결정적 시기였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가요, 팝송을 넘나들며 노래를 들었습니다. 운동권 가요들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학교 공식 소통 채널인 방송국에서 운동권 가요를 스피커로 내보내는 일은 쉽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김민기, 한대수, 양희은, 정태춘의 노래들은 아예 방송불가 금지곡이기도 했습니다. 김민기의 LP판은 소위 해적판이라고 청계천에서 불법 복제된 것을 구해서 들어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몰래 노래 한 곡 섞어 틀었다가는 당장 학생처에서 전화가 오기도 하고  심지어 달려와 전원을 내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 소위 짭새들이 상주하던 시절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래서 대학시절 듣던 여러 음악들이 earworm으로 작동하여 30여 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합니다. 일부러 LP판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가끔 LP 전문 음악실을 찾아 신청곡을 써내고 DJ의 느끼한 목소리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가끔 가던 곳이 홍대 주차장 골목 끝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와 영등포구청 앞에 있는 '마이웨이' 그리고 정동 경향신문 앞에 있는 뮤직바 '음악과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뮤직바들이 DJ가 신청곡에 대한 사연을 읽어주고 하지는 않고 음반을 틀어주는 수준이지만 '마이웨이'는 아직도 DJ 부스 안에서 DJ가 곡에 대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생일 축하 멘트도 해주고 합니다. 팝송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최적의 장소가 틀림없습니다.


사실 음악을 듣는데 일부러 어떤 장소에 찾아가서 듣는다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온갖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휴대폰으로, 이어폰으로 즉각 즉각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찾아가서 들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은 장소가 감정을 불러오는 트리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장소 그 음악이 매칭 되면 과거의 기억들이 비엔나소시지 엮여 나오듯 줄줄이 소환됩니다. 그만큼 장소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도 항상 가는 곳과 연관된 노래들을 다운로드하여서 여행 중에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길을 달릴 때면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orriento)'를 들어야 하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아래에서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들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Battery Spencer 전망대에서 금문교를 바라보며 반드시 중경삼림 OST 버전의 'california Dreaming'을 들어야 하고, 여수에 가면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벽면이 온통 LP판으로 가득한 음악실에서 레코드판 골을 따라 움직이는 바늘의 지지직 거리는 소리까지 따뜻하게 들리게 되면, 들리는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닙니다. 음악의 차원을 너머 기억이 되고 감정이 되고 버립니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발이 스텝을 밟습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고 맥주가 한 병 한 병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밤도 따라 깊어가고 신청곡의 숫자는 늘어갑니다. 함께한 친구들의 우정도 흰 머리카락 늘듯이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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